[문학예술]조선의 저항시인 이어진, 평등과 개성을 부르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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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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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과 아만/박희병 지음/476쪽·1만8000원·돌베개

18세기 시인 이언진(1740∼1766). 조선사회의 신분차별로 불우한 삶을 살면서 저항의 시를 쓰다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둔 요절 시인. 이 낯선 인물에 대해 저자는 “18세기 연암 박지원과 대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이단아”라고 단언한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이언진의 장편연작시 ‘호동거실(호동居室)’을 완역하고 평한 책이다. 이언진에 대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이기도 하다. 호동은 골목길, 거실은 사는 집을 뜻한다.

이언진은 중인 출신의 역관으로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었다.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의 문명(文名)은 사대부 사회에 쫙 퍼졌다. 그러나 지배층은 그를 경계하고 시기했다. 이언진은 죽기 직전 자신의 글을 모두 불에 태웠다. 그건 세상에 대한 마지막 항거였다.

다행히 그의 작품 ‘호동거실’은 화마를 피해 살아남았다. ‘호동거실’엔 17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편들은 형식부터 독창적이다. ‘호동거실’은 한 행이 6자로 이뤄진 6언시다. 전통 한시는 대개 5언이나 7언이다. 그가 6언을 선택한 것 자체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었다.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취한 것이다.

시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평등,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대한 항거, 다원적 가치의 옹호, 개인의 자율성 존중 등이다. 기존 조선 문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모습이다. 이언진은 유교만이 최선은 아니며 유불도(儒佛道) 3교 회통을 주장했고 중인과 평민들의 삶에서 도를 발견하려고 했다.

‘관(冠)은 유자(儒者)요 얼굴은 승려/성씨는 상청(上淸)의 노자와 같네/그러나 한가지로 이름할 수 없고/삼교(三敎)의 대제자(大弟子)라 해야 하겠지.’

이언진은 여기서 스스로 큰 대(大)자를 넣어 대제자라고 불었다. 이언진의 강한 자의식과 높은 자존감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굴종하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를 부처라고 했으며, 시선(詩仙) 이백과 자신을 동급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언진의 저항은 이 같은 아만(我慢)과 맞물려 있다. 아만은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이언진에게 저항과 아만은 표리의 관계다. 저자는 그래서 “‘호동거실’은 저항과 아만이 빚어낸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평한다.

시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도 보인다. 털보, 곰보, 혹부리, 청계천 광통교로 물구경 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아름다운 열전이기도 하다.

‘화나면 종 때리고, 기분 좋으면 황당한 얘기 하니/성품이 정말 진실된 거지/독서하는 사대부엔 이런 자 없거늘/수의사 장씨는 정말 난사람.’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풍자도 만만치 않다. 이 점이 바로 이언진 시의 매력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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