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진 ‘소문’ 5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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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美 CIA가 배후조종? CNN통해 ‘붕괴’ 시청만…
2.레이건 때문? ‘2년전 연설’ 붕괴와 무관
3. 붕괴 필연적 ? ‘월요시위’땐 실탄지급도
4.KGB의 음모? 여행 자유화조치도 몰라
5. 외채가 원인? 채권국 정치적 이용 안해


20년 전 베를린장벽 붕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역사적인 대사건이었기에 배후에 매우 중요한 원인과 배경이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국제관계 전문 격월간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6일 지금까지 떠도는 ‘신화(神話)’는 무엇이며 이는 왜 신화에 불과한지를 소개했다.

▽“CIA가 배후 조종을 했다”=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으로 옛 소련을 치명적으로 약화시켜 결국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CIA는 옛 소련과 동유럽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CIA의 옛 소련 블록 작전담당 책임자는 역사적인 9일 밤 숙소에서 하릴없이 CNN방송의 장벽붕괴 생중계만 시청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문이다”=1987년 6월 12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서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 여기 와서 벽을 허물어 버리시오”라고 연설했다. 이것이 2년 뒤 장벽 붕괴를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 연설은 그의 측근들도 ‘국제용’이 아닌 ‘국내 정치용’이라고 믿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수석비서관도 “훌륭한 연설이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붕괴는 필연적이었다”=동독 정권이 당시 시위를 무력 진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는 시위대 편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그해 6월 중국 공산당의 톈안먼(天安門) 사태 무력 진압에 고무됐다. 베를린장벽 붕괴의 시발점이었던 그해 10월 9일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 때 동독 정부는 경찰에 실탄을 지급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무력 사용 직전 지역 명사와 당 지도부가 설득해 겨우 유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KGB가 배후 조종을 했다”=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일부 공산당 간부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일련의 사태를 꾸몄다는 음모론이다. 최근 비밀 해제된 KGB 자료에 따르면 당시 KGB도 CIA와 다를 바 없이 사태의 핵심에서 배제됐다. 동독 정부가 여행규제를 자유화하기로 결정한 뒤 대규모 동독 주민이 장벽으로 몰려들었을 때도 KGB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 장벽이 무너지던 날 밤에 자고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아무도 깨우지 않았을 정도로 상황 파악이 허술했다.

▽“모든 것이 다 경제 때문이다”=변화를 이끈 것은 결국 경제라는 주장이다. 동유럽 국가는 극심한 외채에 시달렸다. 그러나 채권국인 미국 영국 서독 정부는 동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인상을 줄까 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분석한 포린폴리시는 “동유럽의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 시위 진압을 위한 옛 소련군 파견을 거부한 고르바초프 서기장, 빈사 직전에 있던 동유럽의 경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 하락, 그리고 서방 정보의 대량 유입 등이 어우러져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를 낳았다”고 결론 내렸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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