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경제난 스트레스가 한국인을 매운맛에 길들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민속학자 분석 눈길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스트레스가 심하면 매운맛을 선호합니다. 임진왜란 전후에 고추가 들어오고 6·25전쟁을 겪으며 매운 음식이 확산된 것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연간 국내 고추 소비량 20만∼25만 t, 1인당 소비량 3.8kg. 국내 채소 가운데 소비량 1위를 차지하는 고추.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고추를 많이 먹고 매운맛을 즐기는 걸까.

이와 관련해 민속학자의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다. 국립민속박물관 안정윤 학예연구원이 30일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리는 한국민속학자대회에 발표할 예정인 ‘고추, 그 매운맛에 대한 역사민속학적 시론-한국사회는 왜 고추의 매운맛에 열광하는가’.

안 연구원의 논지 핵심은 사회적 격동기에 사회적,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면 매운맛을 선호한다는 점. 고추의 매운맛을 통해 엔도르핀이 분비돼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 18세기 초반 고추 재배가 보편화되고 18세기 후반 김치와 고추장 음식 문화가 정착됐다. 안 연구원은 “고추가 음식 재료로 정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50여 년인데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속도”라고 평가했다.

안 연구원은 그 요인으로 △조선 사람들이 고추 전래 이전부터 매운맛을 좋아한 점 △고추의 재배가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한 점 △김장 등 겨울식품의 양념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들었다. 그는 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추의 매운맛을 찾게 했을 것으로 추론했다.

안 연구원은 고추의 매운맛이 더욱 확산된 시기를 1950년대로 보았다. 그는 “6·25전쟁, 빈곤과 기아의 스트레스가 매운맛을 찾게 했다”고 추론한다. 1953년 고추장을 사용한 신당동 떡볶이가 나온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안 연구원은 “고추의 매운맛은 중독 증세와 엔도르핀 효과에 힘입어 상업성을 띠었다”며 “이에 따라 1960년대 무교동 낙지볶음, 경기 연천의 망향비빔국수, 대구의 매운 갈비찜 등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원은 “최근 고추의 매운맛을 즐기는 계층은 20, 30대 젊은층”이라며 “취업난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