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오바마는 속지 않을까

  • 입력 2009년 9월 18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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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인 2005년 오늘 북핵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성명 1항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 포기를 약속했다”고 명기하고 있다. 내용상으로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의 대표적 합의 문서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당시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현 민주당 의원)는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詐欺문서 된 9·19 공동성명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 보는 9·19 공동성명은 거짓 약속으로 가득 찬 사기문서에 불과하다. 북한은 그동안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거꾸로 노골적인 핵무장의 길을 걸었다. 북은 2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뒤 미국에 핵군축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은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북의 속임수에 보기 좋게 당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실패한 외교’의 증거물이다.

송 차관보는 1년 남짓 수석대표로 활동하다 장관급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승진했다. 10개월 뒤에는 외교부에 장관으로 금의환향했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쉽게 18대 국회의원이 된 것도 6자회담 수석대표와 장관을 지낸 경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도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총독’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막강한 이라크 주재대사로 영전했다. 두 사람은 9·19 공동성명 4년을 맞으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실패한 북핵 외교의 교훈을 뼈저리게 새겨도 부족할 상황인데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강경하던 생각을 바꿔 북이 요구하는 양자대화를 하기로 했다. 북에 제시할 인센티브(유인책) 목록까지 거론된다. 중국도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가 북에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다 실패하자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평양으로 보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했다. 미국과 중국이 마치 그동안 잘못을 저질러온 것처럼 북한에 끌려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은 6자회담에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4월 선언했다. 6자회담의 어떤 합의에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9·19 공동성명은 어차피 사기였으니 손톱만큼도 미련이 없었을 만하다. 미국의 방향 전환과 중국의 설득 노력을 보면서 북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들의 계획대로 판세가 돌아간다고 판단하고 쾌재를 부르지 않겠는가.

미국은 핵문제를 놓고 이미 2번이나 북한에 농락당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미 양자협상을 통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루었지만 북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9·19 공동성명에 넘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과의 협상에 나서면 북핵 3수(修)가 되는 셈이다. 오바마는 전임자들과 달리 북의 속임수를 깰 수 있을까.

북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 말라

최근 미 정부의 행보를 보면 불안이 앞선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의 6자회담 복귀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하다가 ‘6자회담 틀 안의 북-미 양자회담’을 거쳐 ‘6자회담 촉진용 양자회담’으로 거듭 말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도 비판론이 무성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정일이 또 한번의 승리를 거뒀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외교를 살린다며 오히려 외교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오바마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특별핵정상회의를 주재한다. 이어 내년 3월 핵보유국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도 주도한다. 4월 자신이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들이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현안인 북핵 문제를 해결 국면으로 이끌지 못하면 그의 핵외교는 공허해진다. 오바마는 북-미 양자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북핵 3수에 대한 희망도 생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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