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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더이상 ‘구가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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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더이상 ‘구가이’는 없다”

입력 2009-04-17 02:56수정 2009-09-2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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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의 한 한국음식점에 모인 고려인 가족과 러시아인 친지들이 한국식 큰절로 친척 어른의 회갑을 축하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고려인들 재판 통해 성씨 되찾기 운동 전개

옛소련 관리 ‘具家’를 ‘구가이’로 잘못 옮겨

“이제는 우리 가족 성(姓)이 ‘구가이’가 아니라 구(具)입니다.”

14일 모스크바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조상의 성을 되찾은 고려인 3세 이고리 구 씨(40)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918년 함북 나진에서 연해주로 이주했던 구 씨의 할아버지는 갑자기 ‘구가이’라는 엉뚱한 성으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다. “성이 뭐냐”는 당시 소련 관리의 질문에 구 씨의 할아버지가 “구(具)가(家)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한국말을 잘 모르는 관리가 ‘-ㅂ니다’를 뺀 ‘구가이’를 그대로 러시아어로 옮긴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변형된 성은 오(吳) 노(盧) 유(柳) 허(許)씨 등 주로 한글 받침이 없는 성이다. 이들 성에는 ‘가이(gay)’라는 말이 사족으로 붙어 있다. 다만 이(李) 최(崔)씨 등 인구가 많은 성은 이런 사족이 없다.

사족이 붙은 성을 가진 후손 중 모스크바에 사는 고려인들은 2000년 중반부터 재판을 통해 조상 성 되찾기에 나섰다. 성을 ‘유가이’에서 ‘유’로 바로잡은 빅토르 유 씨(45)는 “최근 남북한에서 온 한인들을 만나다 보니 우리 가족의 성이 잘못됐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성을 되찾아 기쁘지만 여권 부동산 자동차 문서를 다시 고쳐야 하는 등 불편도 적지 않다. 모스크바 고려인협회 발렌틴 천 사무국장은 “일제감정기의 유랑 생활과 스탈린 통치하의 강제 이주, 소련 붕괴 뒤 재이주 등 오랜 유민 생활 끝에 한국말까지 잊어버린 고려인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성을 되찾는 것을 보면 한민족의 뿌리의식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조상 성 되찾기와 함께 한국 전통을 되살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 모스크바 한국식당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환갑잔치와 돌잔치를 벌이는 고려인들로 북적인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고리 김 씨는 “고려인은 대부분 가난해도 부모가 60세가 되면 반드시 환갑잔치를 열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한 한국 교민은 “전통문화 복원에는 고려인이 한국 교민보다 더 많은 열의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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