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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박물관 100년의 사람들]<4>정양모 前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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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박물관 100년의 사람들]<4>정양모 前국립중앙박물관장

입력 2009-04-02 02:57수정 2009-09-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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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70, 80년대 박물관 유물 기증사, 1973년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을 옮기던 때의 비화 등 박물관의 숨은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박영대 기자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자기 362점을 내놓은 고 박병래 선생의 부인 고 최구 여사가 그해 기증을 기념해 열린 특별전에서 전시된 유물을 보고 있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30년 전만 해도 기증품 없인 전시 못해”

1974년 병원에 입원 중인 박병래 선생(1903∼1974)이 눈물을 흘리며 문병을 온 당시 40세의 정양모 국립경주박물관장(75·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손을 꼭 잡았다.

“고생했어요. 고마워. 이제 마음을 놓았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어.” 정 관장과의 마지막 대화였고 박 선생은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대성모병원의 병원장을 지낸 박 선생은 전시 유물이 부족했던 국립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도자기를 흔쾌히 내놓곤 했다. 정 전 관장이 유물을 빌리기 위해 서울 성북동 자택을 찾아와 도자기들을 보고 있으면 “그거 그렇게 안 봐도 나중에 다 박물관으로 갑니다”며 밝게 웃던 그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박 선생은 50여 년 모은 도자기 362점을 전부 기증하기로 했다. “박물관이 고마워해야 할 처지에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숙연해지더군요.”

국립박물관에서 37년(1962∼1999)을 보내며 박물관 현대화에 기여한 정 전 관장(현 한국미술발전연구소장)을 구일회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장이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국미술발전연구소에서 만났다.

정양모=1980년 국립박물관에 4941점의 유물을 기증한 이홍근 선생(1900∼1980) 유족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전시를 위해 미국에 있다가 급히 귀국했는데 내가 도착할 때까지 유물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족 아무도 성북동 자택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손때 묻은 유물을 한 달여에 걸쳐 포장했습니다. 당시 박물관 1년 예산이 청자 한 점도 못 살 정도였으니 이런 분들의 대여나 기증 없이는 전시를 할 수 없었죠.

이 선생의 자제들은 “‘유물은 너희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돌아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평소 말씀을 따라 기증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 유물들은 국보(175호 연꽃넝쿨무늬 대접·이홍근 기증)로, 보물(1058호 난초무늬 호리병·박병래 기증)로 박물관 전시실을 지키고 있다.

구일회=국립경주박물관장이던 1973년 경북 경주시 동부동에서 인왕동으로 박물관이 이전할 때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옮기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죠.

정=종 무게가 20여 t에 달해 종을 실을 가마 제작부터 어려웠습니다. 한국에 가마를 제작할 기업이 없어 일본 수송회사가 만들었어요. 그런데 종을 실은 가마의 높이가 5m에 달해 당시 경주의 전깃줄에 다 걸렸어요. 결국 종이 지나갈 때마다 줄을 끊은 뒤 다시 연결했어요.

박물관의 새 종각에 종을 매달기 전에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포항제철에서 30t짜리 강철 덩어리를 빌려 시험 삼아 달았다. 열흘도 안 돼 종각의 체인이 부러졌다. 질 낮은 쇠로 제작된 탓이다. 정 관장은 곧장 서울로 가 시공업체에 따졌다. “당신네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냐?”

고리의 재설계가 시작됐지만 종의 용뉴(종 위에 붙어 있는 용 모양의 고리)에 끼워 넣을 원통형 봉의 지름이 문제였다. 종 무게를 지탱하려니 지름이 용뉴보다 커진 것. 정 관장은 이전하기 전 종각에 걸었던 봉을 떠올렸다. 300년 된 이 봉을 분석해보니 수백 겹의 금속판을 돌돌 말아 단조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금속이었다. 바로 지금까지 종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봉이다.

구=1976년 일본과 1979∼1981년 미국에서 잇따라 대규모 해외 순회 전시인 ‘한국미술오천년’이 열렸습니다.

정=반일감정이 강한 때라 일본 전시는 비난도 있었죠. 미국 전시는 1957∼1959년 이후 두 번째로 열렸는데 주미 총영사는 “외교가에서 3등국 대우를 받다가 전시 뒤 1등국으로 달라졌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정 관장은 유물 진열장의 현대화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진열장의 색감, 조명, 유물 위에 앉은 미세한 먼지까지 신경 써 관람객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박물관의 첫째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정리=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공동 기획 : 동아일보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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