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 합격한 한국인 김성화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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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서커스를 꿈꾼 젊은이 김성화

“우리는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 단지 우리와… 우리만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제12회 독일 슈투트가르트 솔로 댄스 페스티벌’의 팸플릿을 열자 주황색 글씨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바로 스물아홉의 한국청년 김성화가 올해 자신이 안무하고 출연한 작품 ‘지구온난화’ 사진 옆에 넣은 문장이었다.

21세기 소년은 자신의 말대로 ‘세계를 위해서’ 꿈을 꾸고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춤의 무대 역시 세계로 향했다. 하늘 높이 쏘아올린 꿈의 화살은 이제 세계 최대 공연기획사 ‘태양의 서커스’의 과녁에 꽂혔다.

20대 청년 김 씨는 지난 7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오디션 댄서 부문에 합격했다. 스물여덟 무작정 혼자 영국 런던에 나가 세계 공연 문화를 접하겠다던 부푼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도전은 곧 합격으로 이어졌다. 평소 꾸준히 준비했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지 모른다.

그는 지금 2009년 3월 독일에서 열리는 ‘제13회 독일 슈투트가르트 솔로 댄스 페스티벌’ 참가를 준비하며 태양의 서커스 입단을 기다리고 있다. 연기 공부도 하면서, 춤꾼이자 동시에 배우로서의 모습도 갖춰가느라 그는 여전히 분주하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움직이는 20대 청년 김성화, 무엇 때문에 그리도 세계무대의 꿈을 꾸었을까?

○ 꿈만 꾸기에도 부족한 시간, 춤에 매진하다.

“사춘기가 찾아와서 집에 안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사람 취급을 안 해주더라고요. 중졸에다가 몸도 너무 힘들고, 어디다 말하기도 그렇고, 제가 벌인 일이라 안 되겠다 싶어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 싶었어요.”

춤이 좋아서, 춤밖에 몰랐던 김성화는 어린 시절, TV와 거울을 번갈아보며 가수들의 춤을 따라했다. 결국 부모를 설득해 예고에 입학한다. 단지 춤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자기가 좋아하던 춤만 추는 게 아니었다. 그는 동네의 ‘춤추는 아는 형’을 조르며, “학교가 너무 힘들다. 타이즈 입히고…재미도 없다”고 투정을 부리며, 방송국 백 댄서 자리를 알아본다. 그 형은 ‘나쁜 길’이라며 주저하다가 결국 그를 도와준다. 김씨는 결국 고1때, 그룹 자자의 ‘버스 안에서’, 그룹 구피의 ‘많이많이’ 백댄서로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학교를 자퇴한다. 가출도 하고 1년 간 하고 싶은 일을 했지만, 어딜 가도 무시를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담임교사는 자퇴가 아닌 휴학처리를 해주었고, 또래보다 1년 늦깎이로 학구열을 불태운다.

“교문을 넘어가서 12시까지 연습하고, 다시 2~3시에 학교에 갔어요. 뜻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어요.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그는 다시 춤을 추려고, 1999년 한양대 무용학과에 입학해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대학 4학년이 되던 2002년 제32회 동아무용콩쿠르 현대무용 일반부 남자부문에서 ‘바람의 흔적을 찾아서’로 동상을 수상하고, 한국무용협회 신인무용경연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하는 등 그는 전공을 비껴가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언제나 갈증은 따르기 마련. 계속 ‘힙합’이 그리웠던 그는 유럽으로 떠나 힙합과 재즈를 추게 된다. 이번에도 먼저 부모를 설득하고 홀로 영국으로 떠나 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더 큰 꿈을 꾸게 되고, 결국 태양의 서커스에 지원하게 됐다.

○ 세계무대를 위해 꼭 갖춰야 할 실력, 영어와 인터넷

외국 무대에 나가기 위해서 ‘영어’ 는 필수였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탐이 되기도 하고 제인이 되기도 하면서 영어를 독학하고 있다. 1인 2역이다. 어떤 상황을 일부러 가정하고, 서로 주고받듯 영어를 연습하는 것이다.

스물여덟 런던에서도 다른 오디션에 떨어지더라도 영어만은 꾸준히 공부했다. 런던에서 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을 때도 언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냥 ‘원투쓰리’ 스텝만 나누고 팀 나누는 것만 할 줄 알아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는 지금도 영어를 열심히 독학하고 싶다.

태양의 서커스 팀에서도 공통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만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배짱 또한 필수다.

“동양 사람은 체구도 작고, 뭔지 모르게 괜히 주눅 드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전 누가 어떻게 보든지 ‘내가 좋아하는 거 열심히 하고 갈란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오디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이들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오로지 자신의 꿈만 믿은 것이다. 이 꿈을 지켜주고, 도전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은 또한 인터넷이었다.

김성화는 한국의 보통 젊은이들처럼 인터넷을 꾸준히 이용했다. 손가락 운동만 잘 해도, 천 리 밖까지 내다볼 수 있는 게 인터넷이다. 그가 영국에서 돈이 다 떨어지고, 자포자기의 심정일 때도 그는 인터넷에 매달렸다.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고 좌절할 때도 놓치지 않은 게 바로 컴퓨터였다.

“전기세만 안 끊기고, 돈은 0원이었어요.”

그때 상황은 ‘집에만 있어서 가끔 햇빛만 봐도 어지러운 몸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계속 귀로만 듣던, 태양의 서커스를 접속했다. 그저 멍하니 인터넷을 통해 접수하라는 대로 쳐서 낸 것이다. 메일은 매일매일 열어보던 그는 결국 비엔나로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정작 비엔나에 갈 차비도 없었다. 이때 또 다시 네이트 메신저에서 만난 친한 형의 도움을 받는다. 그 형은 개그맨 출신 연출가 백재현이었다. “일단 가서 해. 오디션을 보라”며 밤새 그를 다그친 그는 “돈은 나중에 갚아도 된다. 비싼 음식점에서 밥을 얻어먹었다고 생각하라”며 흔쾌히 차비를 빌려줬다. 합격에 대한 기대도 없고, 돈도 없던 그는 메신저로 용기와 응원을 듬뿍 받게 됐다.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김 씨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인터넷에서 얻었다. 지인의 도움까지 인터넷의 끈으로 연결됐다.

그의 말에 실제로 기자도 라스베가스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하는 태양의 서커스의 음악 세션 오디션 지원을 눌러보았다. ‘지금 지원하라’는 문장이 심장을 뛰게 했다. 댄스, 음악, 체조 등 모든 지원 분야에 ‘당신의 열정을 불사를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느냐?’는 질문이 달려있다. 춤에 미친 스물아홉의 춤꾼이 지원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태양의 서커스 인터넷 사이트는 컴퓨터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쉽게 돼 있었다.

사실 꿈은 무모한 것이다. ‘한 살만 어렸어도… 돈이 조금만 더 있어도 할 텐데…’ 이런 것들은 결국 꿈과 점점 더 멀어지는 핑계일 뿐이다. 특히 인터넷처럼 편리한 수단이 있다면 도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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