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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상영]누가 자신을 악플러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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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상영]누가 자신을 악플러라 하는가

입력 2008-11-20 06:18수정 2009-09-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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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배우의 거액 기부행위를 둘러싸고 난데없는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초딩(초등학생)’들로 추정되는 일상화된 악플(악성 댓글)의 수준이라면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우리 사회의 논객을 자처했던 분까지 가세해 이념논쟁으로 몰아가는 모습에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사 언급은 심각한 명예훼손

여배우 문근영 씨는 1987년생으로 올해 스물한 살이다. 6년 전부터 남몰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8억5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최근 알려져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기부를 시작했을 때 나이가 15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부행위는 부모와 협의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기부를 받은 측이 ‘익명의 여배우’라고 이 사실을 밝히자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이 발동했고 결국 주인공인 문 씨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인터넷 댓글은 문 씨를 칭찬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교묘한 수법으로 선행을 공개했다는 비난에서부터 문 씨의 외조부가 좌익이었다는 가족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여기에 극우논객으로 이름을 알린 지만원 씨가 등장한다. 그가 맨 먼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제목은 ‘배우 문근영은 빨치산 슬하에서 자랐다’였다. 지 씨는 이 글에서 문 씨의 선행은 옳지만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음모가 있다면서 문 씨의 외조부 행적을 자세히 서술했다. 이어 올린 글의 제목은 ‘문근영은 빨치산 선전용’이고 그 다음은 ‘북한의 공작과 문근영 케이스’였다. ID ‘비바람’이 보낸 ‘문근영은 국민여동생이 아니라 좌익여동생’이란 글도 올려놓았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글들은 문 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런 제목의 글을 쓰면서 ‘선행만은 옳았다’고 언급해도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글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제목보다 심한 내용도 많다.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는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지 씨는 문 씨를 다룬 두 개의 글에서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간첩들이 중앙정보부를 사칭해 벌인 사건”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엄혹했던 그 시절 간첩들이 광고주들을 서울 한복판(서빙고동) 아지트로 차례로 납치한 뒤 고문해 동아일보 광고를 해약하도록 했는데 억울하게 중앙정보부가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정상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 인식이다.

지 씨의 이런 무리한 글이 세인의 주목을 받으려는 욕구 때문인지, 빨치산의 자손이 칭찬받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확신 때문에 나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선행은 선행으로 받아주면 된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이타적(利他的) 행위는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한 증좌라고 누구나 배웠다.

문 씨가 비극적인 가족사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장해 톱스타가 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없는 사람을 돕고 사는 심성까지 길렀다면 그 자체로 대한민국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치밀한 각본을 짜서 익명으로 기부를 한 뒤 공개되도록 해 주목을 끌고 그렇게 함으로써 빨치산 가족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으려 했다는 악플러들의 주장에서는 병적인 냄새가 난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를 두 개로 쪼개려 하는가.

선행이 정치색으로 변질돼서야

사회를 향한 선행이 정치색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따지고 들면 누군들 자신의 정치색이 없겠는가. 약한 자를 돕는 행위에 이념이 필요할 리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선행마저도 비판할 수 있는 확신이 두렵다. 좌파건 우파건 이런 극단적 인사가 많아지면 설 자리가 더 협소해질 뿐이다. 하물며 글로벌화가 진행된 이 복잡한 시대에 오래전 사라진 연좌제를 부활시키는 듯한 행태는 시대착오적이다.

선행을 하고도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어린 여배우의 입장이 딱하다. 지 씨에게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한 수를 권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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