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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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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입력 2008-11-11 02:58수정 2009-09-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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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화약.’

쓰러진 촛불은 화약열차를 순식간에 폭탄으로 돌변시켰다. 막걸리 한 되와 소주 한 병이 화근이었다. 화약호송원은 술기운에 덮고 자던 침낭을 찼다. 쓰러진 촛불은 화약열차를 집어 삼켰다. 불붙은 화약열차는 거대한 폭탄이 돼버렸다.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한국화약의 다이너마이트와 전기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을 실은 화물열차는 정거장인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이처럼 폭발했다.

31년 전인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역은 마치 원자폭탄이 떨어진 듯 처참했다. 이리역사는 송두리째 날아갔고 주변 건물이 모두 무너졌다. 30km 떨어진 전주까지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다. 전무후무한 대참사였다.

이 사고로 59명이 사망했다. 중상 185명, 경상 1158명. 모두 1402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이리역 주변 500m 안에 있던 건물은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반경 4km까지 충격파의 피해를 보았다.

사고의 전말은 이랬다.

화약호송원 신무일(당시 36세) 씨는 11일 오후 역 앞 술집에서 막걸리 한 되와 소주 한 병을 마시고 화차로 돌아왔다. 폭약을 실은 화차 안에서 신 씨는 닭털 침낭을 덮고 촛불을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촛불이 침낭으로 떨어져 불이 붙었다. 몸이 뜨거워지자 덮고 자던 침낭을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순간 불길이 번져 화차에 실린 화약으로 옮아붙었다.

신 씨는 이날 오후 9시 13분경 맨발로 뛰쳐나와 “불이 났다, 불이야!”라고 외쳤다. 역 사무실로 급히 달려가 “빨리 대피하라”고 소리치고 달아났다.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폭음과 함께 섬광이 한꺼번에 터졌다. 그는 사고 직후 숨었다가 다음 날 아침 경찰에 붙잡혔다.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였다.

당시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사고 진상이다.

폭발 현장엔 깊이 10m, 직경 30m의 웅덩이가 파였다. 화차와 철도레일은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산산조각이 난 화차 파편은 100m를 날아갔다. 역 주변을 지나가던 행인이 파편에 맞아 숨졌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자 이리시내는 전쟁이 휩쓸고 난 뒤의 폐허를 방불케 했다.

마침 당시 역 앞의 창인동 삼남극장에서는 ‘하춘화 리사이틀’이 열리고 있었다. 사고 순간엔 극장 안에 700여 명이 있었다. 갑자기 “꽈∼광” 하는 연쇄폭음과 함께 2층 천장이 내려앉아 객석을 덮쳤다. 이 바람에 5명이 깔려 숨지고 1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수 하춘화가 부상하자 사회를 보던 코미디언 이주일이 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인연이 돼 무명의 이주일은 하춘화의 지원에 힘입어 나중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일약 대중스타가 된다.

사고 현장인 익산역에는 호남고속철도(KTX)의 전북 정차역이 건설되고 800억 원이 투입돼 역세권이 개발될 예정이다. 재중국 동포인 장률 감독은 이리역 폭발사고를 겪은 두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리’를 만들어 이달 중 선보인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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