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행동 풍부화 프로젝트’를 아십니까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코끼리거북이 뛰노는 붉은코아티를 지켜보고 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코끼리거북이 뛰노는 붉은코아티를 지켜보고 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고양이 크기의 붉은코아티 두 마리가 커다란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의 등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친다.

코끼리거북은 귀찮아하기는커녕 오히려 손자들의 재롱을 반기는 눈치다.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는 남미에서 날아온 붉은코아티 대여섯 마리가 102세나 먹은 코끼리거북과 동거를 하고 있다.

붉은코아티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코끼리거북에게 응석을 부린다.

동물 중 가장 오래 사는 코끼리거북은 두 눈만 껌뻑거리며 요동도 하지 않는다.

붉은코아티는 남미 열대림에 사는 코가 긴 너구리 종류의 동물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즐겁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만 해도 코끼리거북은 오랫동안 같이 살던 친구 거북이 죽으면서 외톨이가 됐다.

붉은코아티는 창살이 쳐진 좁은 우리에서 풀이 죽어 있었다.

서울대공원 윤정상 동물복지과 팀장은 “나무타기를 즐기는 붉은코아티의 생활에 맞게 사는 곳을 옮긴 뒤 나무 여러 그루를 설치하고 밧줄을 늘어뜨렸더니 너무나 활기차게 놀았다”고 밝혔다.

한방에 넣어준 코끼리거북도 절로 흥이 나는 눈치다.

동물들을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불만을 해소하고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동물 행동 풍부화 관리 방식’이 국내 동물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 영상취재 : 동아사이언스 전동혁 기자

■ 서울대공원 새 관리방식 도입

동물 행동 풍부화 관리는 100년 전 미국 하버드대 행동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 박사가 영장류 동물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환경을 바꿔준 것이 시초다. 50년 전 스위스 취리히 동물원이 동물원 중에는 처음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1월 1일 설립 99주년을 맞는 서울대공원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마승애 서울대공원 포유류 큐레이터는 “동물 행동 풍부화는 전시 환경, 먹이, 사회적 관계, 놀이, 감각 풍부화 등 5가지로 나눌 수 있다”며 “붉은코아티는 전시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달가슴곰도 좋은 사례다. 이 동물은 나무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동물원에는 나무가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서울대공원 측은 반달가슴곰 주위에 말라 죽은 나무를 심었다. 마 큐레이터는 “한동안 신나게 나무와 놀던 반달가슴곰이 힘이 좋아졌는지 어느 날 벽 위로 올라가기까지 해 관람객들이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고 떠올렸다.

먹이를 이용해 동물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한다. 사막에서 몸을 세우고 주위를 살펴보는 깜찍한 행동으로 인기인 미어캣은 서울대공원에 오기 전에는 콘크리트 바닥의 우리에 갇혀 특유의 발랄함을 잃고 있었다. 미어캣을 데려온 사육사들은 사는 곳에 흙을 두껍게 덮어 이 동물이 땅을 파며 놀도록 했다. 땅속이나 나무속에 먹이를 숨겨놓자 미어캣은 먹이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이외에도 후각이 예민한 재규어나 표범은 향수를 뿌린 나무토막을 주기도 한다.

강현옥 홍보팀장은 “투자가 많은 외국 동물원은 한참 앞서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는 표범에게 살아 있는 동물을 던져주며 야성을 잃지 않도록 하고, 그 모습을 관람객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평생 숲 속 나무 위에 사는 오랑우탄을 위해 바닥에 내려오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어 오랑우탄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오마하 헨리둘리 동물원은 동물 배설물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를 주기적으로 측정해 고릴라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윤정상 팀장은 “서울대공원도 내년에 공중놀이터 개념의 오랑우탄 전시관, 장난기 많고 머리 좋은 침팬지를 위한 놀이터 등 새로운 개념의 유인원관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동물들이 추운 겨울에도 바깥에 나와 살 수 있도록 온돌침대, 열등이 달린 지붕 등을 설치했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동물들이 갖고 놀 장난감을 함께 만들고 있다.

이원효 서울대공원 소장은 “동물원에서 희한하게 생긴 이국의 동물을 보며 놀라워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미래의 동물원은 동물들의 원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지역의 문화를 함께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emes@donga.com

▼코끼리거북의 일기▼

▽2008년 4월=내 나이 102세. 백년해로하던 짝을 잃어 너무 외로운데 집의 연못 위에 나무를 얽은 구조물이 들어섰다. 그곳은 붉은코아티란 친구들의 집이었다.

▽2008년 5월=붉은코아티는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내 등을 타넘고 주위를 뱅글뱅글 돌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집주인인 나는 구석에 숨어있을 뿐이다.

▽2008년 6월=우리가 동거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활달한 붉은코아티를 보고 있으면 나도 즐겁다. 집 안을 돌아다니는 내 몸에 비벼대는 그들의 행동이 싫지 않다. 짝을 잃고 오랜만에 웃었다.

 

[관련기사]억대연봉 이건웅 박사, 휴대전화 터치스크린 국산화 ‘일등공신’

[관련기사]2011년 쏘아올릴 ‘아리랑 3호’ 日 미쓰비시重서 발사 맡을듯

[관련기사]無熱 정보처리소자 기술 어느 나라가 주도권 잡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