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어느 古家의 부부싸움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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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용두리 남양만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아래 아름다운 고택 옥란재(玉蘭齋)가 있다. 남양 홍씨 참의공파 후손들이 400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사랑방으로 ‘책 읽는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잘 다듬어진 넓은 마당에 있는 두 개의 연못에는 연꽃과 수련이 한창이다. 토종 우렁이가 연못에 가득하고, 밤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닐 정도로 생태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장마철 고택 안방 창가에 앉아 낙수 소리를 듣는 것은 한 편의 교향악을 듣는 것이나 진배없고, 봄가을에 숲 속에 스피커를 틀어놓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마치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에 울려 퍼지는 아리아를 듣는 느낌이다.

지장경-금강경 베껴 쓴 어머니

현재의 고택은 4대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왔다. 수백 년 된 밤나무 은행나무 등 고목들이 즐비하고, 목가구와 고서(古書) 제기(祭器) 등 골동품들도 잘 보관돼 있다. 장독대에는 몇 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항아리들도 있다. 많은 돈을 들여 호화롭게 꾸민 현대식 별장과는 확실히 다른 품격과 풍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맏아들인 이 댁 주인과의 인연으로 이따금 옥란재에 다녀오는 호사를 누리곤 한다. 관리인이 상주하지만 서울에 사는 주인 내외는 수시로 이곳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맞는다.

얼마 전 이 댁에서 귀한 서책(書冊)을 발견했다. 현재 경기 수원시에 살고 있는 주인의 노모가 몽당연필이나 다름없는 꽁지 붓으로 베껴 쓴 금강경과 지장경 두 책이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으나 첫 장에 적혀 있는 주인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롱 속 어머니의 서필을 버리지 않고 서책을 만든 이유’라는 두 쪽짜리 글에는 이 책을 만든 사연과 내력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옥란재라는 고택 당호(堂號)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아호(雅號)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됐다.

일제강점기 보통학교 6년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어머니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교사로 재직하던 아버지와 결혼해 2남 3녀를 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시 서 화 실력과 역사 지식을 키워 나간 분이다. 고지식한 아버지와 때론 갈등을 겪곤 했지만, 깊은 불심으로 가정을 지켜 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은 장롱 속에서 우연히 불교 경전을 베낀 한지 두루마리 뭉치를 발견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담담하면서도 감회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털어 놓으셨다. 지장경을 쓰신 것은 어머니 나이 76세 때. 심한 부부싸움 끝에 시골집으로 내려와 울화를 다스리며 꼬박 나흘에 걸쳐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필체가 차분해진 것 같다. 닷새쯤 뒤 아버지가 시골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갔다.

어머니가 81세 때 또 한 번 부부 사이에 위기가 있었다. 추운 겨울 시골집으로 내려온 어머니는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금강경 전문을 베껴 나갔다. 부모가 늘그막에 영영 결별하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했던 자식들은 일주일쯤 뒤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를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삶의 지혜 담은 필사본 家寶로

지난해 말 아들은 두루마리를 두 권의 책으로 만들어 책머리에 글을 써 붙였다. ‘이 서책 두 권은 황혼 이혼의 위기로부터 부모님 두 분을 지켜준, 의미 있는 물품입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육체의 빛을 나누어 주신 것으로 부족해, 밀교(密敎)처럼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이 서책에 담아 주셨습니다. 때로는 참고 인내하는 것으로부터도 우리의 생명은 더욱 빛나고 용솟음칠 수 있다는 것을….’

모친과 부친은 현재도 건강하게 해로 중이라고 한다. 내외간의 갈등과 응어리를 이렇듯 지혜롭게 해결한 노부부와 이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녀들. 두 권의 서책이야말로 이 가문과 옥란재의 으뜸가는 가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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