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호]1919년 정통성 vs 1948년 정당성

  • 입력 2008년 8월 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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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이 대한민국의 기산점(起算點) 논란에 휘말렸다. 그 논쟁의 일방은 대한민국의 출발이 왜 1948년이냐고 반발한다. 올해가 1919년부터 손꼽아 건국 89주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19년과 1948년을 놓고 이렇게 다투는 까닭을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난감함의 사로(思路)는 대략 이러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정당(正當)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1948년의 의의를 밝히는 건국헌법 전문(前文)의 알파와 오메가다. 지난 60년을 관통해 온 유장한 뜻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하여”라는 표현으로 현행 헌법에도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1948년의 뿌리가 1919년에 있다는 선언이다. 자구대로만 새기자면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에 ‘건립’됐고 1948년에 와서 ‘재건’됐다. 초대 국회의장이자 대통령인 이승만이 건국 당시 ‘민국(民國)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역사관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부인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국기점, 臨政-制憲 엇갈린 주장

그러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제정한다’라는 갈무리 동사다. 헌법 개정은 기존의 헌법을 전제한 개념인 반면 헌법 제정은 무(無)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창조하는 행위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의 ‘임시헌장’ 이후에도 5차례에 걸쳐 헌법 개정을 이뤄낸 그 나름의 헌정사를 갖고 있다. 1948년의 의미가 정녕 ‘재건’에 있다면 건국헌법은 대한민국 제7차 헌법이어야 하고, 상응하는 동사도 ‘개정한다’로 쓰는 게 순리(順理)다. ‘제헌이 임시정부 헌법을 개헌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헌국회에서 제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건국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건립’이 아닌 ‘재건’이란 표현을 통해 ‘역사적 연속성’을 선포하고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이 아닌 ‘제정’을 규정하며 ‘역사적 불연속성’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공존이 ‘제헌과정이 날림공사였다’는 일부의 평가를 뒷받침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다르다.

단순화하면 정통성(orthodoxy)이란 본래 통시적(通時的) 개념이다. 왕조의 개창(開創)이건 이단종파와 대립되는 정통교단이건 정통성은 일종의 보학(譜學)에 의존한다. 그래서 조선은 기자(箕子)에서, 천주교회는 성 베드로에서 발원한 정신적 족보에서 권위를 구한다. 건국의 정통성 역시 개념의 속성상 삼일운동과 임시정부로부터 유래하는 계보적 연속성으로 귀결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정당성(legitimacy)은 공시적(共時的) 개념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역사적 기원과 무관하게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에서 도출된다. 1948년 현재시점에서의 정당성은 ‘정당(正當) 또 자유로히’ 치러진 5·10 총선에서 비롯한다. 민주적 보통선거라는 명시적이고도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반만년 역사상 전무(全無)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헌법 전문의 역사관, 이 또한 지당하지 아니한가.

정통성과 정당성이 다툴 이유는 별로 없다. 독립 파키스탄의 법통은 영국의회의 1947년 ‘인도독립법’으로 귀결하지만 그렇다고 파키스탄 독립의 정당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정통성과 정당성이 전혀 다른 개념인 까닭이다.

개념 차이 인정 땐 다툴 이유 없다

마찬가지로 1919년의 정통성과 1948년의 정당성이 2008년에 와서 다툴 이유가 없다. 정통성의 관점에서는 1919년, 정당성의 관점에서는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89년 전 건국의 정통성을 되새겨 삼일절을 건국절로 개칭(改稱)하자는 주장은 차라리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0년 전 건국의 정당성을 기리자는 데 찬물을 끼얹는 심산(心算)은 또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치가 이럼에도 불거지는 대한민국의 기산점 논란, 이제는 그 불편한 속내를 속 시원히 얘기할 필요가 있다.

김성호 연세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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