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의 비극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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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염 수출로 한때 세계최고 富國

자원고갈-흥청망청 겹쳐 알거지로

호주와 하와이의 중간쯤에 있는 나우루 공화국은 면적 21km², 인구 1만3000명 정도인 섬나라다. 바티칸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기도 하다.

이 작은 나라에서 지난주 폭도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

웬만해선 지구촌의 관심 대상이 되기 힘든 섬나라의 정정불안에 영국 BBC방송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한때 1인당 국민소득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가 순식간에 빈국으로 전락한 특이한 역사도 이 나라에 쏠리는 관심에 한몫을 한다.

이 섬은 비료에 쓰이는 인산염의 보고(寶庫)였다. 수백만 년간 퇴적돼온 바닷새 배설물이 산호충과 작용해 만들어진 인광석이 섬 전체에 널려 있었다. 1968년 호주에서 독립한 주민들은 인산염을 수출해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다.

BBC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일부 주민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와 피지로 쇼핑을 다녔다고 한다. 자전거로 1시간 반이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고, 포장도로라곤 제한속도 시속 40km의 도로가 1개 있을 뿐이지만 람보르기니 등 고급 스포츠카도 앞 다퉈 수입했다. 관리들은 외국인 사기꾼들의 말만 믿고 뮤지컬 공연 기획 등에 국부를 투자했다.

그러나 채굴권을 넘겨받은 외국 투자회사들의 무분별한 채굴로 2003년경에는 인광석이 거의 고갈되면서 ‘파티’는 끝이 났다. 거리엔 슬럼이 난립했고 2007년 말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5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난을 해결하겠다며 외국 회사들이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세우기 쉽도록 제도를 완화하고, 여권 장사를 했다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나마 일자리와 소비를 창출하는 끈이 7년 전 유치한 호주의 난민수용소였으나 호주가 이를 곧 폐쇄하기로 해 불안이 고조되면서 결국 폭동이 일어난 것.

나우루 정부는 이 나라를 원양 참치 선단의 급유 및 수리지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지만 근로 의욕을 잃은 주민들이 과연 따라줄지 지켜볼 일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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