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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선수 출신 사업가 이호성의 ‘인생 병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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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선수 출신 사업가 이호성의 ‘인생 병살타’

입력 2008-03-11 02:54수정 2009-09-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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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네 모녀’ 숨진 채 발견… 수배자 前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자살

선후배를 맞이하던 그의 얼굴은 당당했다. 눈을 부릅뜨고 육두문자를 내뱉어 더그아웃 전체를 긴장시키던 현역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A 선수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야구인이 모인 자리였다. 2002년 12월 15일 오후 광주 북구 매곡동 호성웨딩문화원.

이호성 씨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예식장에서 하객을 식장까지 직접 안내했다. 예식이 끝나자 선후배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여기 음식 정말 괜찮지라∼.” 구수한 사투리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장사가 너무 잘된다. 조만간 인근에 2호점을 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정보시스템 분야에도 뛰어들려고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이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야구계 선후배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니폼을 입었을 때 그는 늘 ‘야구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명문 광주일고와 연세대 출신. 대학시절 2차례나 타격상을 받을 만큼 재능이 뛰어나 국가대표에 뽑혔다.

1990년 해태에 입단한 뒤에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프로 데뷔 첫해부터 주전을 꿰찼고 2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에 뽑혔다.

그는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김일권 장채근 등 강타자가 즐비했던 해태에서도 가장 힘이 셌던 선수로 통한다.

신인 때 라커룸 벤치에 튀어 나온 못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박았다는 일화가 있다. ‘차력사’라는 별명이 여기서 나왔다.

1995년 시즌을 끝으로 선동렬과 김성한 선수가 해태를 떠났다. 야구 명가의 명성도 이제 끝이라는 말이 나왔다.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하지만 이 씨는 이순철 선수와 함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해태를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타이거즈 구단이 2001년 KIA로 바뀌어 그를 해태의 마지막 4번 타자로 부를 정도.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의 주력 선수들이 퇴출을 당하자 이 씨는 협의회 재건에 발 벗고 나서 2001년 1월 송진우에 이어 제3기 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2001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선수 시절 통산전적은 타율 0.272, 102홈런, 526타점.

사업가로서의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던 호성웨딩문화원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인생의 위기가 시작됐다.

이 씨는 2003년 투자자를 모아 40억 원을 마련한 뒤 화상경마장을 차리려고 전남 순천시 덕암동에 오피스텔을 지었다.

그해 10월 한국마사회로부터 화상경마장 허가를 따냈지만 시민단체의 반발로 농림부 허가가 늦어졌다. 이듬해 7월 100억 원대의 부도를 맞았다.

다급해진 이 씨는 부동산 투자 사기사건에 연루되면서 2개월 동안 구속됐다. 공인중개사 박모(47) 씨 등이 그를 끌어들여 “충남 연기군 등 신행정수도 건설지역에 투자하면 시세 차익을 챙겨 주겠다”며 투자자로부터 37억 원을 받아 챙긴 사건이었다.

이 씨는 당시 경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운동선수만 하다 사회 물정을 너무 몰라 벌어진 일이다. 사회 경험이 없어 아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지인은 “너무 성급하게 욕심을 부린 것이 탈이었다. 나중에는 투자를 받으려고 조직폭력배와도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 그는 광주를 떠났다. 야구계 선후배와는 연락도 대부분 끊었다. 이후 그는 서울에 주로 머물렀다.

은평구 갈현동의 횟집을 드나들다가 주인인 김모(46·여) 씨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다. 김 씨의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내연 관계였고 곧 재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김 씨 일가족 4명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공개 수배된 10일 그는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몇 시간 뒤 그의 고향 부친 묘소 부근에서 김 씨 일가족도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씨와 친했던 동료는 “호성이는 성격이 다혈질이었지만 의리가 있고 화통해 해태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선수였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씨에게는 이혼한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이 한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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