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유환]폴리스라인, 어느 지점이 알맞나

  • 입력 2008년 1월 1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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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시위 대응방식을 바꾼다고 한다. 폴리스라인을 위반하는 시위자를 철저히 검거함으로써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의 각종 갈등 해결의 첫 번째 단추는 법질서 확립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법질서가 애매하거나 법의 집행률이 낮을 때 분쟁당사자는 실력행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규칙이 없을 때에는 강한 힘을 행사하는 자가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경찰청이 이번에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고 현장에서 검거하겠다고 한 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법질서 확립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범법이냐 아니냐를 판정함에 있어 폴리스라인이라는 수단이 사용된다는 데 있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은 경찰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집회 및 시위의 한계이므로 이를 넘어서는 행위는 불법이며 법집행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법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없다.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법이 허용하는 일정 부분의 재량을 갖는 것이고 경찰의 재량권 행사로 설정된 폴리스라인은 민주시민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경찰이 재량권을 남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폴리스라인의 설정이 혹여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정도에 이른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집회와 시위를 어느 정도로 허용해야 하느냐는 사실 순수하게 경찰의 재량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차대한 사안이다. 시위는 일종의 사회갈등의 분출이요 사회적으로는 불편을 초래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제약되면 정치적 자유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가 제약돼 민주주의 자체에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규제는 고도의 국가적 사회적 균형점에 위치해야 한다.

과도한 통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미흡한 통제는 사회공익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폴리스라인으로 시위를 통제하고자 한다면, 경찰은 양 가치의 절묘한 균형점 상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야 한다. 만약 폴리스라인이 과도한 통제의 의미로 설정된다면 폴리스라인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통제로 인식되고 그 자체가 정치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대규모로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는 경우이다. 폴리스라인의 침범이 불특정 다수의 군중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에 대한 법집행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폴리스라인을 통한 시위통제가 성공하려면 우선 일반 국민과 시위대 자신에 있어서도 폴리스라인의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뿌리내려야 하며 국민의식 가운데 폴리스라인의 권위가 확립되어야 한다. 폴리스라인의 정당성과 권위는 그 적정성에 근거한다. 폴리스라인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통제선, 공익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통제선, 시위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질서유지선으로 기능하고 그러한 관행이 쌓여 간다면 폴리스라인의 권위는 자연히 확고해질 것이다.

요컨대 경찰이 아무리 폴리스라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위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여도 시민사회와 시위대의 협조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폴리스라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먼저 형성되지 않고 제도로만 폴리스라인 준수를 강행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다는 말이다. 폴리스라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해 가기 위해 경찰은 폴리스라인의 설정 단계에서부터 시민사회와 여론의 공감대를 얻어야만 할 것이다. 폴리스라인을 시위통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경찰은 시민사회와 시위대의 합리적 의견을 충분히 들어 이를 운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본다.

김유환 이화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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