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08]단편소설 심사평

  • 입력 2008년 1월 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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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적 불모성 풍자

가상세계에 비춘 성찰 돋보여

본심에 오른 작품들의 수준이 기대치를 넘은 덕분에 눈은 즐거웠고 머리는 아팠다. 네 편이 최종 심의 대상이 되었다.

박홍의 ‘나는 존재한다’는 반복되는 일상에 진력 난 인물의 괴물화 과정을 시간적 추이를 따라 꼼꼼히 묘사한 게 돋보였는데, 소재와 전개가 새롭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신희의 ‘두 여자친구’는 파트너의 죽음에 강박된 동성애자의 집요한 기억, 사회적 편견에 짓눌린 의식의 자발적 억압과 욕망의 항존이라는 마음의 굴곡을 뜨개질과 고양이를 통해 감각화하면서 부조한 작품이었다. 다만 중요인물인 남편의 역할이 어정쩡하게 처리되었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지영의 ‘춘자’는 이성에 안달복달하는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의 저열함과 욕망의 비루함을 헤집은 작품으로, 널뛰듯 춤추는 생각과 동작의 천연스러움과 속도가 글쓴이의 재능을 짐작하게 하였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데도 많았다.

인류 멸종 후 사이보그에 의한 고고학적 인류 탐색의 과정을 단면화한 조현의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현대인의 정신적 불모성을 풍자하기 위해 냅킨을 등장시키고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을 끌어오는 등 기발한 발상과, 충격적 편지로 시작해 마지막 반전도 편지로 끝내는 재기 있는 구성으로 단연 돋보인 작품이었다, 가상세계에 비춘 현실에 대한 예각적 성찰이라는 모색 속에 ‘잘 빚어진 항아리’라는 고전적 이상까지 충족시켰으니 당선작으로 뽑히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정과리 문학평론가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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