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이 늘고 있다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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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으로… 충동적으로… 잔인하게…

《낯선 사람의 예기치 못한 폭력과 그로 인한 생명의 위협…. 스릴러 영화에서나 마주칠 법한 공포가 현실을 위협하고 있다. 전남 보성군의 ‘노인과 바다’ 사건, 서울 홍익대 앞 ‘택시 납치’ 사건 등은 최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대표적 살인사건이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경찰청이 매년 발표한 범죄통계를 분석한 결과 제3자를 대상으로 한 충동 살인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살인사건도 10년 사이 55.5%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원한이나 치정에 의한 살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대상이 무차별적이고 불필요하게 과도한 폭력성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살인사건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급증하는 살인=국내 살인사건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600∼700건 수준을 유지했던 살인사건은 1998년 966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살인사건은 점차 증가해 2004년부터는 매년 1000건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살인사건은 1073건. 10년 전인 1996년 690건과 비교하면 55.5%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구 10만 명당 살인 발생 건수를 나타내는 발생률 역시 높아졌다. 1990년대 살인 발생률은 1.4∼1.6건 수준이지만 1998년 이후에는 매년 2.0∼2.2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살인사건이 늘어난 데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 사회적 변화를 주 원인으로 꼽는다.

경찰대 박현호 교수는 “경제위기 이후 악화된 취업난이 구체적 원인”이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늘면서 사람 목숨 정도는 희생시킬 수 있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버킬(overkill)’이 대세?=살인에 이르는 폭력의 수위도 흉포해지고 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오버킬’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버킬은 사람을 살해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의 과도한 폭력이 동반된 끔찍한 살인을 말한다.

실제로 몇 달 전 충북 옥천군에서는 30대 남성이 홧김에 아버지를 30차례나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부산에서는 택시 운전사가 온몸을 난자당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하는 등 오버킬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충북대 심리학과 박광배 교수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함께 욕구 불만 요소가 과거보다 많아진 데 비해 개인 통제력은 약화됐는데, 분노가 폭발했을 때 이를 제어하지 못해 오버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동적 살인=낯선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묻지 마 식’ 살인의 증가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살인 통계에서 살해범과 피해자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제3자 살해가 21.6%로 그 비율이 가장 높다.

반면 과거 25%를 육박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친족 간 살인은 18.6%로 크게 줄었다.

살인 동기별로도 우발적 살인이 38.4%로 가장 높아 1996년 29.8%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복성 살인은 11.5%에서 9.0%, 가정 불화가 원인이 된 살인은 10.7%에서 7.4% 등으로 ‘이유 있는’ 살인은 대부분 줄었다.

이에 대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범죄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자신이 노출되는 후환을 방지하려고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충동 살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범인 살인범의 비율이 2002년 27.1%에서 지난해 37.1%로 크게 늘었다. 이 교수는 “범죄 상대를 고를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단순 절도를 저지르다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터무니없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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