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의 나이에 장편소설 ‘조선 태조…’복간한 작가 김성한 씨

  • 입력 2007년 8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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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음성이지만 차분하고 또렷하다. 작가 김성한(88) 옹.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이란 말 속엔 노장의 당당함과 회환이 함께 서려 있다. 책과 함께한 인생, 책으로 추슬렀다. 사진 제공 해와비
낮은 음성이지만 차분하고 또렷하다. 작가 김성한(88) 옹.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이란 말 속엔 노장의 당당함과 회환이 함께 서려 있다. 책과 함께한 인생, 책으로 추슬렀다. 사진 제공 해와비
“역사가 나무의 줄기와 큰 가지라면 역사소설은 잎사귀이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입니다. (역사소설을 통해) 당대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를 함께 돌아볼 수 있소.”

여든여덟 살, 작품 집필이 쉬운 나이는 아니다. 그것도 자기 자식과 같은 책을 뜯어고쳤다면 더욱 고단했을 듯. 원로작가 김성한(사진) 옹이 그 일을 해냈다. 3권짜리 묵직한 대하장편소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을 21일 펴냈다.

‘조선 태조…’는 김 옹이 1966년 출간했던 소설 ‘이성계’를 복간한 책이다. 2, 3년간 문헌과 사료를 찾아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새롭게 썼다. 미수(米壽)의 나이에 40년도 넘은 책을 다시 손본 이유가 뭘까.

“당시에도 고증을 하긴 했지만 사료가 부족했습니다. 상세한 분석이 뒷받침이 안돼 상상력에 의존한 부분이 컸죠. 책을 펴낸 뒤 지낸 세월 동안 관련 자료도 다양하게 접하고 공부도 많이 했죠. 소설 배경이 된 시절의 풍경을 재생할 기반이 생긴 겁니다.”

‘조선 태조…’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를 다뤘다. 고려 공민왕 10년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는 무장 시절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위화도회군부터 역성혁명까지 소설의 초점은 언제나 태조에게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한 발짝 물러난 태도를 취한다. 이성계보다는 그의 주변, 그리고 명멸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박권상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번 소설에 대해 “혼란과 변동의 시기에 나타난 인간의 원죄를 오늘의 현실에 재조명했다”고 평했다.

“사람의 일생은 짧습니다. 제약이 존재하죠. 그러나 많은 이가 모이고 경험이 쌓여 지혜도 자랍니다. 이성계도 혼자서 역사를 이룬 게 아니죠. 다만 리더로서 자신의 본분을 읽고 시대를 끌고 나갈 자질이 있었던 겁니다. 리더는 당시나 지금이나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게 “결과론적 평가”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자신의 노작에서 굳이 찾아낸 작은 시사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당부는 “오랜 세월 살았다고 남에게 훈계할 처지는 못 된다”며 고사했다.

김 옹은 1919년 함남 풍산 출생으로 1950년 단편 ‘무명로’로 등단했다. 1970년대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지내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요하’(1968년), ‘임진왜란’(1989년) 등 역사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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