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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아편전쟁下]안토니 베스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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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아편전쟁下]안토니 베스트 박사

입력 2007-07-19 14:21수정 2009-09-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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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지식인 20명에게 듣는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10대 사건은?

■ 미국을 비난하는 것은 간단하지만-안토니 베스트 박사, 런던 정치경제 대학원(LSE)

일본의 근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나는 1863년에서 64년에 걸친, 영국 함대에 의한 가고시마(鹿児島) 포격(살영(薩英) 전쟁)과 4국 함대에 의한 시모노세키(下関) 포격(바칸(馬関) 전쟁)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페리의 내항 시점에는 “서양을 축출하자”는 생각이 아직 일본에 남아 있었지만, 급진파들은 두 전쟁을 통해 외국 세력을 무력으로 축출하기에는 일본의 힘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결국 개국을 결정하였다.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중요한 전기는 조선의 근대화를 시도한 개혁파 김옥균(金玉均)의 쿠데타와 그 실패일 것이다. 김옥균 등은 일본 정부의 암묵적인 지지에 의지하여 궐기했지만, 결국 배신을 당했다. 이후, 조선의 내셔널리스트는 반일파가 되었다. 일본은 군사 지배를 한층 더 강화하여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치닫게 된다.

러일전쟁의 승리와 1905년의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에 “대국 의식”을 가져왔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대일 불신감이 싹트게 되었다. 같은 해에 맺어진 베이징 조약에 의해 중국 철도의 일부가 일본의 지배 하에 놓인 것은 후에 만주국 건설과 중국 침략으로 이어졌다.

세계 대공황은 1930년대의 세계를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농촌의 피폐를 낳았고 도시의 실업자를 증가시켰다. 그러한 불만이 정당 정치의 토대를 파괴하여, 군부의 대두를 가능케 하였다. 세계적으로는 보호주의적인 경제 블록화를 부르는 가운데, 일본은 만주 등에서 권익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중일전쟁의 발발 자체는 우발적인 충돌이 계기였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를 기회로 원료의 자급을 위해 중국을 침략한다는 일본의 의도를 넘어서, 결국에는 히틀러의 독일과 자유세계의 전면 대결로 상징되는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그 일익을 담당했던 전략적 문제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원폭 투하라는 중대사는 논할 필요조차 없다. 전후 연합군에 의한 일본 점령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본 사회에 다원주의를 가져온 점에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와 여성 참정권, 민주적인 선거제도, 그리고 헌법 9조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을 비난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들은 상당히 안정된 전후 일본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종종 보수 합동으로 자민당이 탄생한 1955년과 미일안보조약 개정으로 혼란했던 1960년 중에서 어느 쪽이 중요한지를 묻곤 한다. 나의 대답은 60년이다. 안전 보장을 축으로 “보통 국가”를 지향한 초기의 기시(岸) 노선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노선을 계승한 이케다(池田) 정권의 소득배증 노선으로 교체되었지만, 1960년은 이 두 조류의 교차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닉슨의 방중으로 미중 관계에 이어 중일 관계가 개선됨으로써, 일본과 중국이 최대의 무역 파트너가 되는 길을 열었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가 없었다면 엔고(円高)와 투기열에 의한 일본의 버블 경제는 없었을 것이고, 버블 경제가 없었다면 90년대의 경기 후퇴도 없었다. 현대사에서는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 아닌가.

일본의 근대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정치제도의 정상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 등의 원로가 정치의 지침을 내리는 동안에는 메이지 헌법체제가 그 기능을 다 했지만, 그들이 죽자 내각, 추밀원, 의회, 육•해군의 권위 서열이 불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메이지 헌법 체제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서구 열강들은 제국주의적인 세계 지배를 마음껏 해 놓고, 일본의 침략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논의가 있다. 비록 서구 열강의 태도가 위선적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기무라 다다카즈 木村伊量)

▼안토니 베스트 (Antony Best) 의 약력

1964년 영국 출생. 근현대 일본과 동아시아의 관계사가 전문이다. 특히,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 까지의 역사 과정 분석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안토니 베스트 씨의 “내가 선택한 10 대 사건”

○ 영국 함대에 의한 가고시마(鹿児島) 포격(살영(薩英) 전쟁)과 4국 함대에 의한 시모노세키(下関) 포격(바칸(馬関) 전쟁)(1863-64)

○ 조선의 개혁을 시도한 김옥균의 쿠데타(갑신 정변) 실패(1884)

○ 포츠머스 강화 조약과 그 해의 베이징 조약(1905)

○ 세계 대공황(1929-31)

○ 중일 전쟁의 발발(1937)

○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1945)

○ 미국에 의한 일본 점령과 제반 개혁(1945-1947)

○ 일•미 안보 조약 개정을 둘러싼 소란(1960)

○ 닉슨 방중(1972)

○ 플라자 합의(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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