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둥근 새 동화’가 일러 준 포기의 지혜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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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미국 친구가 잠깐 어디 다녀온다며 여섯 살짜리 딸 시애나를 내 연구실에 맡기고 갔다. 달리 함께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시애나가 갖고 있던 동화책을 읽어 주기로 했다. 제목은 ‘둥근 새(The Round Bird)’였다.

“작고 둥근 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몸이 동그랗고 날개가 작아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둥근 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날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다 해 보았지만 날 수가 없었습니다. 둥근 새는 나무를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힘겹게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여 날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둥근 새는 그냥 떨어져 버렸습니다. 마침 나무 밑에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겨우 열두어 쪽에 불과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둥근 새가 마침내 날아오르는 장면이 언제 나올까 기다렸다.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올라갔다 다시 떨어지고, 마침내 다른 새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것이 당연히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의 귀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둥근 새는 자신이 아주 많이 원하고 노력을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둥근 새는 나는 것을 포기하고 둥근 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끝이었다.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별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시애나에게 말했다. “이게 끝이야. 근데 둥근 새가 다른 새처럼 날아가는 게 끝이었으면 좋을 텐데. 그치?” 나의 말에 시애나가 의아한 듯 대답했다. “왜요? 둥근 새는 날지 못하지만 아마 둥글둥글 잘 구를 걸요.”

미국의 유명한 동화 중에 ‘꼬마 기차(The Little Engine that Could)’라는 이야기가 있다. 산 너머에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장난감을 갖다 주는 기차가 엔진 고장으로 중간에 서게 된다. 지나가는 번쩍거리고 멋진 새 기차에게 대신 장난감 운반을 부탁했더니 화물차가 아니라고 거절당하고, 크고 힘 좋은 화물차에게 부탁했더니 가는 길이 다르다고 거절당한다.

결국은 아주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꼬마 기차에게 부탁하고, 기차가 최선을 다해서 산을 넘어 장난감을 배달했다는 이야기이다. 꼬마 기차가 힘겹게 산을 넘어가면서 되풀이하는 말 ‘난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I think I can)’는 이야기의 후반부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동화의 메시지는 남을 도와주는 마음과 자신의 능력을 믿는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책 뒤에 붙은 해설자의 설명이 재미있다. ‘이 이야기를 읽어 주는 어머니나 선생님께’라는 제목으로 “여기서 꼬마 기차는 ‘그래, 난 할 수 있어(Yes, I can)’라고 말하지 않고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에게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적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난 할 수 있어’와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는 분명히 다르다. 어린아이에게 ‘할 수 있어’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를 구별해 가르치는 것이 어쩌면 미국적 사고방식의 근간인지 모른다. 주어진 상황이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애당초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실용주의다.

진정 내가 잘할 수 있는 길 찾아야

흑인 여성으로 처음 미국의 일류 대학 스미스칼리지의 총장이 된 루스 시먼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어려운 것(difficult)’과 ‘불가능한 것(impossible)’을 구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려워도 가능해 보이는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도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계획했습니다”라고 답했다.

‘하면 된다’라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 둥근 새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라고 생각하는 지혜가 새롭다. 때로는 포기도 미덕이기 때문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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