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金나라 시조는 안동 권씨일 것”

  • 입력 2007년 2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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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조 가계도 추적 ‘금조사연구’ 펴낸 금감원 윤명수 수석조사역

《여진족의 국가로 알려진 금(金·1115∼1234)의 시조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윤명수(51) 수석조사역은 최근 중국의 정통역사서 25사 중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금사(金史)’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금사’와 금태조 완안민(아골타)의 가계계승 문제를 추적한 ‘금조사연구’를 함께 펴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사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函普)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금을 계승한 청(후금)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는 금국(金國)의 명칭이 신라왕성 김(金)씨에서 비롯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근거는 또 있다. 청 황실의 만주어 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도 금의 시조가 김행(金幸)의 아들 또는 금준(今俊)이라는 설이 기록돼 있다. 김씨는 본디 금씨로 발음됐는데 이(李)씨를 왕조로 한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금이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오행설의 영향으로 금을 김으로 발음했다는 주장에 입각하면 금준은 곧 김준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에 귀순을 거부했던 마의태자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윤 씨는 이를 추적하던 중 조선 인조 때 문신 김세렴이 남긴 ‘동명해사록’에서 “금나라의 시조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권행은 본디 경주 김씨로 신라 고창(古昌·경북 안동시)의 수령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게 한 데 분개해 고려를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서 권씨를 하사받아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됐다.

윤 씨는 이를 바탕으로 ‘함보의 신라/고려인 부친=김행=권행’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권행은 고려통일 이후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되고, 정1품 태사(太師)의 벼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려가 금나라 수립 전 여진족 추장들에게 관례적으로 내린 관직이 태사였다.

결론적으로 함보는 경순왕의 사위인 권행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며 마의태자와 신라 부활운동을 펼치다 마의태자가 숨진 뒤 만주로 진입해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족의 추장이 됐다는 것이 윤 씨의 주장이다. 문신 김세렴의 부인이 권행의 맏아들 권인행의 아내와 같은 양천 허씨인 점, 마의태자가 웅거했다는 설악산 권금성이 권장군과 김장군이 쌓은 성이라는 전설, 1011년 여진의 함선 100여 척이 안동 인근 경주 지역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그러나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행의 후손이 권인행 한 명만 등장하는 등 아직도 풀려야 할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일찍부터 만주사에 관심이 깊어 만주어를 독학했다는 윤 씨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자극을 받아 2004년부터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금사의 번역에 매달리는 한편 휴가 때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현지 조사를 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씨의 나라라면 금·청은 신라를 계승한 김씨의 나라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상하이임정의 역사교재였던 ‘신단민사(新檀民史)’나 일제강점기 사학자 신태윤의 ‘배달조선 정사’도 발해-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요-금-청사를 한국사의 방계로 포함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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