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어령의 삼국유사 코드 읽기…‘이어령의 삼국유사’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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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의 삼국유사/이야기 이어령 지음/446쪽·2만2000원·서정시학

우리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웅녀는 어둠 속에서 쑥과 마늘을 참아내고 인간이 됐다. 그러나 만약 배경이 고조선이 아닌 로마였다면 호랑이와 곰은 동굴 속에서 치고받고 사투를 벌인 뒤 승자가 인간이 됐을지도 모른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으로 동양 정신문화 해석에 남다른 통찰을 보여준 저자가 이번에 들고 나온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 콘텐츠를 통해 한국인의 원형을 분석하겠다는 의지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건국설화부터 이미 서양과 다른 정체성이 녹아 있다. 그것은 바로 ‘덕’이라는 덕목이다. 신분이 다른 하늘의 아들과 곰(동물) 사이에 태어난 중간자 단군은 조화와 결합으로 축복받은 왕이다. 세계 건국 설화에서 이렇게 화합과 사랑 속에 권력을 받은 왕은 흔치 않다. 서구의 그리스 신화만 해도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크로노스가 왕위를 빼앗긴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지만 그 역시 아들 제우스에 의해 제거되지 않던가.

저자는 한국인은 이러한 ‘덕’의 강조를 통해 ‘성자형’을 추구했다고 본다. 다른 나라가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꾼 영웅형을 지향했다면 우리가 지향한 것은 조화를 내세운 성자다.

떡을 물어 나온 잇자국이 적다는 이유로 왕위를 양보한 석탈해 설화, 칼이 아닌 여론을 등에 업고 아내를 용으로부터 되찾아온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 칼을 버리고 노래를 불러 역신을 물리친 처용은 왕위를 두고 형제끼리 사투를 벌인 로물루스 설화(로마)나 아내를 되찾기 위해 10년간 전쟁을 벌인 트로이 전설(그리스)과 얼마나 다른가.

일단 삼국유사 설화의 진실 여부는 접어두자. 저자는 단군설화에 나오는 신시가 있는 태백산이 오늘날의 묘향산인지 아닌지, 환웅이 수곰을 의미하는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한다. 신화 뒤에 숨겨진 코드를 발견해 한국의 문화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찾자는 것이다.

그런 전제 아래 펼쳐지는 저자의 삼국유사 해석은 동서양의 신화와 철학을 넘나들며 독특한 재미를 안겨준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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