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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브랜드]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무한 업그레이드 100년 질주

기사입력 2006-09-11 03:05:00 기사수정 2009-10-08 11:04:16



《2년 전 그의 목숨은 잠시 위태로웠다.

버림받은 퇴물로 사라지느냐, 새롭게 재탄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미 20년이 넘은 그의 존재는 왠지 진부해 보였다.

주변에선 새로운 ‘스타’를 찾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안 됩니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20년의 두 배가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의 이름은 쏘나타(SONATA).》

2004년 8월 현대자동차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제5세대 쏘나타의 탄생을 앞두고 회사 내부에서는 브랜드를 바꾸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변화 없는 이름이 파격적인 품질 변화를 덮어 버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쏘나타가 다져 놓은 브랜드 파워는 이런 우려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당당하게 다시 선택받은 지금, 그의 행보에선 일말의 머뭇거림이나 주저함도 찾아 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대표 자동차’라는 자신감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 쏘나타를 다시 정의하다

한국 사람에게 대뜸 ‘쏘나타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10년 전만 해도 ‘4악장 형식의 악곡을 뜻하는 음악 용어’라는 대답이 많았을지 모른다. 이제는 ‘중형 자동차’라는 답변이 더 자주 나온다고 한다. 용어의 본래 정의까지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브랜드의 힘이다.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최장수 브랜드다. 1985년 11월 탄생한 이래 쏘나타Ⅱ, 쏘나타Ⅲ, EF쏘나타, 뉴EF쏘나타, NF쏘나타 등으로 족보를 이어가며 이름을 지켜왔다. GM대우자동차가 중형차의 이름을 레간자, 매그너스, 토스카 등으로 바꾼 것과는 대조적이다.

쏘나타는 지난해 4월 300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1994년 이후 단 2번을 빼고 10년간 국내 최다판매 1위 자리를 유지해 온 덕분이다. 브랜드 자산가치는 3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유아기’의 성장은 힘들었다. 쏘나타는 2004년 이전에도 존폐의 기로에 선 적이 있다. 쏘나타Ⅱ로 이름이 바뀌기 전의 일이다. 민망한 판매실적 속에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쏘나타는 처음엔 실패한 브랜드였어요. 당시 스텔라 차체에 엔진 사양만 조금 높여서 바꿔 단 모델이었으니까요. 이 시기의 쏘나타를 ‘쏘나타 족보’에 포함시킬지를 놓고 사내 역사기록소위원회에서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죠.”(현대차 국내상품팀 A과장)

생존의 열쇠는 품질이었다. 쏘나타 제작팀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기술혁신과 품질개선에 매달렸다. 2, 3, 4세대로 새 누에고치를 입고 벗을 때마다 목표치는 올라갔다. 쏘나타의 첫 글자 ‘S’가 있으면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소문에 S자를 도둑맞은 ‘오나타(ONATA)’가 부쩍 늘어나는 등 브랜드 스토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사람이 개를 물었다”

“아,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모두가 NF(쏘나타)에 진짜 무섭게 달라붙었다니까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도 나도 책상 앞에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써 붙였어요.”(현대차 국내마케팅팀 B과장)

가속도가 붙은 쏘나타의 성장세는 제5세대인 NF쏘나타에서 폭발했다. 기존의 어떤 단계보다 기술과 디자인의 도약 폭이 크다는 평가 속에 다져진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쏘나타는 2006년 미국의 전문 자동차평가업체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 외신은 이를 두고 “(개가 사람을 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었다”고 썼다.

현대차 브랜드전략팀 김상대 차장은 “우리가 도요타를 이겼다는 얘기를 듣고 닛산자동차 사람들이 놀라 자빠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브랜드 전략 연구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닛산 관계자들이 “닛산 내부에는 도요타를 이길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는데 현대차가 해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두르더라는 것.

2005년 본격적으로 가동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존재도 쏘나타의 전망을 밝게 한다. ‘made in USA’로 미국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만큼 이제는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다. ‘쏘나타라는 발음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창녀를 의미)는 지적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는 ‘쏘니카(SONICA)’로 바꿨다.

○ 나만의 색깔을 찾아서

쏘나타가 글로벌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깊어진 고민이 있다. ‘당신의 브랜드 콘셉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히 내놓을 답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BMW는 ‘성공한 젊은 오너드라이버의 질주 쾌감’, 메르세데스 벤츠는 ‘사회 최고위층 중년신사의 안정감’처럼 세분화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볼보는 몇 번을 굴러도 끄떡없는 안전성을 각인하는 데 집중해 왔다. 쏘나타는 아직 이런 그림을 명쾌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콘셉트의 부재는 쏘나타의 TV 광고가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 외에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가끔 쏘나타 옆을 날아가는 새들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까.

7년간 쏘나타의 국내 전략을 맡아온 현대차 이윤수 과장은 “10대에서 70대까지의 소비자를 두루 껴안아야 하는 대중적인 중형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난한 이미지가 최대 강점이라 특정 계층의 소비자만을 겨냥한 메시지를 제시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쏘나타의 독특한 이미지를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형제 관계인 기아자동차 모델과 분명한 차이를 두면서 위로 그랜저, 밑으로 아반떼와 겹치지 않는 쏘나타만의 색깔을 짚어내는 고민이 한창이다.

2년 정도 계속돼 온 이 작업은 조만간 마무리될 예정. 껑충 도약할 준비가 된 21세기 쏘나타는 출발의 총성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30∼40년 연륜 해외 명차 즐비… 끝없는 진화

올해 나이 스물한 살. 쏘나타가 국내 최장수라고는 해도 세계적인 명차 ‘형님’들에 비해서는 한참 어린 편이다. 도요타의 크라운, 닛산의 세드릭, 포드의 머스탱은 4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혼다의 간판 브랜드인 어코드와 폴크스바겐의 골프도 30년 넘게 살아남았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고객들의 로열티를 강화하기 위해 대표 브랜드 육성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륜이 깊은 장수 브랜드가 생겨난 것이다.

크라운은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난 뒤 64년에 유럽 수출을 시작했다. 현 12세대 크라운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단계별로 기술과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쳤다. 1976년 세상에 나온 어코드는 84년 미국 생산에 나서 북미공략 역사만 20년이 넘는다. 지금의 어코드는 7세대. 어코드 모델의 하이브리드 차량이 개발되는 등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경쟁업체의 장수 차종은 간간이 흘러나왔던 쏘나타 교체론을 잠재우는 데 큰 힘이 됐다. “남들이 40년 넘는 브랜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한참 멀었다”는 ‘쏘나타 맨’들의 설득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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