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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조 루이스, 슈멜링에 복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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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조 루이스, 슈멜링에 복수전

입력 2006-06-22 03:06수정 2009-10-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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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암운이 감돌던 1938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양키 스타디움.

세계의 눈이 운동장 가운데 사각의 특설 링에 쏠렸다. 세계권투협회(WBA)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미국의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의 5차 방어전이었다.

도전자는 독일의 막스 슈멜링. 2년 전 당시 27전승(23 KO승)으로 질주하고 있던 루이스에게 불의의 첫 패배를 안긴 인물이었다.

루이스는 1937년 챔피언에 오른 직후 “슈멜링을 꺾을 때까지는 나를 챔피언이라 부르지 말라”며 복수전을 별러 왔다.

당시 세상의 관심은 최고 라이벌전이란 재미만은 아니었다. 서방 언론매체는 두 사람의 경기를 ‘흑인 대 백인’ ‘자유 대 파시즘’ ‘선(善) 대 악(惡)’의 대결로 묘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경기 며칠 전 루이스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함께 식사하며 “당신의 두 팔에 미국(운명)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쟁 준비로 바쁘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도 슈멜링에게 “미국 검둥이를 때려 눕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라”고 특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이다. 경기 직전 루이스의 각오에서도 살기가 느껴진다.

“걱정되지 않습니까?”(기자)

“걱정됩니다. 오늘 밤 링 위에서 슈멜링을 죽여 버릴 것 같아서요.”(루이스)

경기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루이스의 강펀치를 여러 차례 맞은 슈멜링이 1회 2분 4초 만에 KO패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사악한 나치’에 대한 ‘자유의 승리’라고 흥분했지만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1년 뒤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루이스도, 슈멜링도 권투장갑을 벗고 총을 들어야 했다.

관중은 두 사람의 격렬한 싸움에 미친 듯 흥분했지만 링 밖에서 두 사람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은퇴 후 사업가로 성공한 슈멜링은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불우한 시절을 보내던 루이스에게 자주 돈을 보내 주었다.

1995년 90회 생일을 맞은 슈멜링은 “아쉬운 게 있느냐”는 질문에 “내 친구 루이스가 먼저(1981년 사망) 세상을 떠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대답했다.

요즘 축구대전(大戰)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되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결을 통해 적대감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정을 싹틔우는 것이 스포츠가 아닌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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