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퇴직임원 함부로 내치지 마세요. 그러다…

  • 입력 2006년 4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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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임원 출신 A 씨. 그가 삼성에서 물러나자 평소 삼성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던 한 언론사 기자가 찾아왔다. 삼성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A 씨는 “아무리 회사를 떠났지만 ‘친정’에 대해 얘기하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며 그 기자를 조용히 돌려보냈다. 기업 측에서 퇴직임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의 ‘딥스로트’(Deep throat·익명의 극비 제보자)가 현대차의 전직 고위임원으로 알려지자 대기업들의 퇴직임원 관리 시스템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 삼성그룹 최고대우

삼성의 퇴직 임원 관리는 ‘환상적’이다.

떠날 때 상무급은 상담역(1년), 전무급은 자문역(2년), 부사장과 사장급은 고문(3년)으로 임명하고 현직의 70∼80%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 비서와 운전사, 차량, 판공비, 자녀 학자금도 똑같이 준다. 다니던 계열사 안에 사무실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현직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현대차는 기업 덩치에 비해 야박한 편. 전무급 이상이 퇴직할 때만 ‘필요에 따라’ 1년간 고문으로 위촉하고 급여의 80%를 지급한다. 가끔 협력업체로 전직을 주선하기도 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삼성의 퇴직임원 대우에 대해 “그 정도냐…. 엄청나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LG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 Placement)’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LG전자가 2002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6개월 과정으로 정리-탐색-새 출발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초기엔 노여움과 충격을 풀어 주는 심리 조절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선 취업전략 수립과 창업 아이템 분석을 배운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SK㈜ 출신 퇴직 임원 모임인 ‘유경회’ 멤버를 상대로 매년 초청행사를 여는 등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삼성(성대회, 성우회) LG(LG클럽) CJ(CJ클럽) 등 대부분의 대기업은 퇴직 임원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을 따로 제공하고 있다.

○ 떠날 때 잘해 줘야…

기업들의 퇴직 임원 관리는 아주 조심스럽다. 함부로 내쳤다가 등에 비수를 맞는 사례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현대차 계열사인 글로비스를 수색할 때 검찰은 벽 속 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까지 꿰뚫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고위층 내부 고발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 수사 때도 검찰은 손바닥 보듯 비밀장부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한 SK 관계자는 “어느 책상 몇 번째 서랍에 무슨 서류가 있는지도 다 알고 있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전관예우’에 극진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그동안 회사에 봉사한 보답 차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3년간 고문이나 자문역으로 임명하고 회사에 묶어 둬 고급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현대차 사건을 두고 재계에서는 말이 많다.

우선 잘나갈 때는 ‘자기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잘못되면 회사에 비수를 꽂는 일부 임원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유야 어찌 됐건 ‘해도 너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임원은 개인적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각에선 ‘정몽구 회장 특유의 지나친 깜짝 인사가 빚은 참담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아차 출신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오전에 멀쩡히 임원회의를 주재한 사장이 오후에 갑자기 퇴직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조직에 끊임없는 긴장감을 줘서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됐지만 과연 글로벌 경영과 부합하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주요 그룹의 퇴직 임원 관리 현황
삼성상무급은 상담역(1년), 전무급은 자문역(2년), 부사장급 이상은 고문(3년) 임명전 급여의 70∼80% 수준의 기본급 지급비서 운전사 차량 판공비 자녀학자금은 현직과 똑같이 지급전직 사장단 모임 ‘성대회’와 전직 임원 모임 ‘성우회’ 운영
현대·기아자동차전무급 이상은 필요에 따라 1년간 고문으로 위촉해 급여의 80%를 지급하고 별도의 사무실 제공협력사 임원으로 주선. ‘현친회’ 운영
LG1, 2년간 부사장급 이하 자문역(급여 지급), 사장급 이상 고문(급여와 차량 지급) 임명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 운영(전직 알선, 창업 지원 등), ‘LG클럽’ 운영
SK상무급(1년), 전무급(2년), 부사장급 이상(3년)으로 나눠 퇴임할 때의 급여 지급SK㈜ 출신 임원 모임인 ‘유경회’ 운영. 매년 최태원 회장이 유경회 임원 초청 행사
롯데이사급 이상 고문 임명, 계열사별로 50∼70%의 급여 지급
GS부사장급 이하 자문역으로 50%의 급여 지급, 사장급은 여기에 차량 및 사무실 제공GS칼텍스 호유회, GS건설 상록회 등 퇴직자 모임 운영
금호아시아나1년간 자문역(부사장급 이하), 고문(사장급) 임명, 50%의 급여 지급차량과 운전사, 골프회원권 제공. 사장과 아시아나항공 퇴직 임원은 우대탑승권 평생 지원
CJ직책에 따라 1, 2년간 자문역(상무), 고문(부사장), 상담역(사장) 등의 직책 부여, 70%의 급여 지급. 전현직 임원 모임인 ‘CJ클럽’ 운영, 본인과 배우자 건강검진 지원, 창업 지원
자료: 각 그룹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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