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댓글 잘 달면 출세”…온라인 국정운영 실태

  • 입력 2006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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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정브리핑’에 올린 언론 보도에 대한 ‘댓글 달기’의 실적을 각 부처 평가에 반영키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댓글의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댓글 달기 활성화 등 온라인을 활용한 국정 운영 방식은 업무 효율을 높이는 측면이 있지만 일각에선 국정 통제시스템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댓글의 절반은 반박과 해명=국정브리핑 사이트의 6일자 ‘언론보도종합’ 코너를 분석한 결과 이날 보도된 뉴스를 유형별로 묶은 47가지 사안에 대해 6건의 반박과 4건의 해명 댓글이 달려 있었다. 또 정책 추진 경위 및 상황에 대한 설명을 담은 댓글은 10건이었다.

5일자의 경우 44가지 사안에 달린 댓글 26건 중 9건은 반박, 5건은 해명, 12건은 설명이었다.

본보 6일자 ‘정부의 댓글 달기 독려’ 보도에 대해 국정홍보처는 분석1팀장 명의의 댓글에서 “공무원들의 부처 의견 달기를 독려한 것은 사실이나 공문으로 ‘청와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본보의 확인 결과 국정홍보처는 2월 10일 각 부처 홍보 담당자들에게 댓글 첨부를 독려하기 위해 보낸 e메일 문서의 제목 바로 옆에 ‘(대통령 지시사항)’이라고 명기했다.

한편 본보 6일자에 실린 ‘공공기관 홈페이지 주민등록번호 노출’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즉시 보완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고 행정자치부는 “해당 기관별로 시정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눈치 보며 실적 경쟁=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나는) 인터넷에서 대세를 잡아 일반 대세로 몰아간 아주 희귀한 대통령인 건 맞다. 이 분야(인터넷)에 대한 이해를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인터넷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매일 1시간∼1시간 반 인터넷에 접속해 주로 국정브리핑 사이트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공무원이 국정브리핑에 단 댓글 중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국정홍보처에 “글 쓴 사람이 누구냐”며 신원을 묻기까지 한다는 것.

이 때문에 공직사회에선 국정브리핑에 글 하나 잘 올리면 ‘출세’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 정부 부처의 고위 공직자가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대통령이 직접 살펴보기 때문에 국정브리핑에는 정부 방침에 찬성하는 글밖에 실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댓글의 실적을 놓고 부처 간 경쟁을 해야 하므로 공무원들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간부급 공무원은 “주 단위로 실적을 장차관에게 보고해야 하며 국정홍보처에서 댓글을 빨리 달라고 재촉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무원은 “기자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국정브리핑의 댓글을 보는지 정말 의심스럽다”며 “실적만을 위해 너무 많은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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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본보 6일자 기사▽

“BH(청와대) 지시사항이다… 매일 댓글을 달라”

정부가 ‘국정브리핑’에 올린 언론 보도에 대해 각 부처가 ‘댓글’을 달도록 독려하면서 그 실적을 부처 평가에 반영키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여러 명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는 2월 10일과 3월 30일 모든 부처에 공문을 보내 “국정브리핑의 언론보도종합 댓글 작성 현황을 매일 오전, 오후 2회 점검해 댓글 실적을 부처 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이는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고 전달했다.

국정홍보처는 댓글의 형식, 적절한 표현, 모범 사례 등이 담긴 별첨 자료도 보냈다.

이에 따라 한 경제 부처는 5일 부내 통신망을 통해 “BH(Blue House·청와대를 일컫는 관가의 속칭) 지시 사항”이라면서 “다음 주부터 댓글 실적이 부처 평가에 반영되는 만큼 각 실, 본부는 매일 국정브리핑의 내용을 확인해 당일 댓글을 달아 달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은 매일 정부 정책과 관련한 각 언론사의 톱뉴스 등 주요 기사를 요약해 ‘언론보도종합’ 코너에 싣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공무원은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매일 국정브리핑을 체크해 댓글을 달라니 어이가 없다”면서 “위에서 내린 지시니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처는 아예 ‘댓글 달기 전담 직원’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언론보도 내용에 댓글을 달려면 상당한 글 솜씨가 필요하고 핵심 인력들이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만큼 특정 직원에게 전담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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