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전시공간, 그 자체가 작품…박기원展 ‘파멸 RUIN’

  • 입력 2006년 3월 2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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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여러분, 전시실에 들어가실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세요.’

4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설치작가 박기원 씨의 개인전 ‘파멸 RUIN’을 찾은 관객들은 색다른 안내문 앞에서 잠시 멈칫거린다. 그러다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다시 한번 놀란다. 전시장 안에 아무런 작품도 걸려 있지 않다. 그림이나 오브제가 아닌, 텅 빈 전시공간 자체가 설치작품이기 때문이다.

2005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인 박 씨는 사방 벽과 바닥 모두를 검은 먹으로 색칠한 얇은 무늬목으로 덮어버렸다. 불에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볼품없는 잿빛 공간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조심조심 걷지 않으면 작품이 훼손될 것만 같다.

처음엔 휑한 공간 안에서 어색하지만 잠시 그 안에 머물다 보면 깊은 동굴이나 모태 속에 들어온 듯, 편안하게 다가온다. 자기의 안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도를 닦는 기분이다’ ‘오히려 아늑함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흥미로운 느낌을 즐겼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계의 허리 세대인 중진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초대전. 4월 4∼27일 제2전시실에서 채우승 씨의 개인전 ‘∼머물다-가다’가 열리며 이순종, 정정엽 씨의 전시가 이어진다. 4월 11일 오후 4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02-760-4724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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