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민-동혁 형제 폴란드 쇼팽콩쿠르서 ‘2위없는 공동3위’

  • 입력 2005년 10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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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콩쿠르 본선이 열렸던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니아의 로비에서 자리를 함께한 임동민(형·오른쪽), 동혁 씨 형제. 두 사람은 2위 없는 공동 3위로 입상했다. 바르샤바=연합뉴스
쇼팽 콩쿠르 본선이 열렸던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니아의 로비에서 자리를 함께한 임동민(형·오른쪽), 동혁 씨 형제. 두 사람은 2위 없는 공동 3위로 입상했다. 바르샤바=연합뉴스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왔고 후회 없는 연주를 했습니다.”(임동민)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2등상을 주지 않은 것은 좀 짓궂은 일 같지만요.”(임동혁)

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15회 폴란드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동민(25) 동혁(21) 씨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에 입상했다.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입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2일 오전 1시(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니아에서 열린 수상자 발표에서 폴란드의 라팔 블레하츠 씨가 1등(상금 2만5000달러)을 차지했고 임 씨 형제에게는 공동 3위(상금 1만5000달러)가 돌아갔다.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함께 진출했던 손열음(19·여·한국예술종합학교 4년) 씨는 입상에 실패했다.

모스크바 음악원 수학 후 독일로 이주해 하노버 국립음대에 재학 중인 이들 형제는 1996년 모스크바 국제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1, 2위를 사이좋게 차지하면서 음악계에서 ‘신동 형제’로 불려 왔다. 동혁 씨는 이어 롱티보 국제 콩쿠르 1위 수상,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수상 거부 등으로 유명세를 타 클래식계의 신진 스타로 떠올랐다. 동민 씨는 국내에는 동생보다 덜 알려졌지만 섬세한 연주 스타일로 부조니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콩쿠르는 폴란드 관객이 ‘30년 만의 자국 우승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폴란드 출전자가 나오면 연주 시작 전부터 기립박수를 치는 등 일방적인 응원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이 때문에 ‘2등 없는 3등 공동 입상’은 더욱 값지게 보인다.

동혁 씨는 본선을 치르며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결선 연주 도중 피아노 소리가 이상해 1악장을 끝내고 잠시 연주를 중단해야 했던 것을 꼽았다.

“피아노 속에 연필 하나만 들어가도 건반 무게가 다르고 덜그럭하는 소리가 나는데 나중에 보니 조율기구가 들어 있었다. 마치 의사가 수술하고 뱃속에 가위를 넣은 채 꿰맨 것과 같은 상태였다. 연주는 후회 없이 했지만 1, 2악장의 흐름을 끊어야 했던 점, 1악장에서 불필요하게 신경을 써야 했던 점이 뒤늦게 한이 된다.”

동혁 씨는 “어차피 콩쿠르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만큼 형이나 나나 더 이상 콩쿠르에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졸업 후 미국으로 이주해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민 씨는 “동생이 2등상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연주활동도 하고 피아노 이외의 다른 것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는 “예전에는 결선 진출도 상상하지 못했을 텐데 형제가 나란히 입상한 것은 한국 음악계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일부에서 ‘폴란드 심사위원들의 텃세’를 들먹이지만 10년 혹은 20년 후에 더 좋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며 두 사람의 수상을 높이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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