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우주…박창범 교수팀 우주진화 시뮬레이션 성공

  • 입력 2005년 1월 6일 17시 57분


코멘트
나선은하
현재 우주가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탄생했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는 정설이다. 하지만 빅뱅 이후 물질이 어떻게 뭉쳐져 수많은 은하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생명체가 태어났는지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새해 벽두에 한국 과학자들이 우주 진화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통해 우주가 진화해 온 과정을 속속들이 재현했기 때문.

▽슈퍼컴퓨터로 우주 절반 구현=한국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의 박창범 교수와 김주한 박사는 거대한 정육면체의 가상공간에서 우주가 초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6일 밝혔다.

박 교수팀의 성공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거대도전과제 지원사업에 힘입어 슈퍼컴퓨터 4대의 900GB 주 메모리와 중앙처리장치(CPU) 128개를 80일간 활용한 덕분이다.

연구팀은 한 변이 260억 광년인 정육면체에 질량을 가진 입자 86억 개를 우주 생성 당시처럼 분포시킨 후 이들이 어떻게 은하나 은하 무리를 형성하는지 시뮬레이션했다. 260억 광년은 우주 끝까지 거리의 절반을 넘는 엄청난 규모다.

박창범 교수팀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만들어낸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 우주'. 이 우주에서는 9억 광년이 넘는 거대구조(A)가 발견된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B) 은하들이 대류모로 밀집돼 있음을 알 수있다. 그속에서 개개 은하(C)의 내부를 조사할 수도 있다. 박 교수팀의 시뮬레이션이 은하 하나에서 거대구조까지 생성되는 과정을 동시에 구현할 수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제공 고등과학원

박 교수는 “이번 시뮬레이션의 장점은 수십만 광년 크기의 은하 하나에서 수십억 광년 크기의 우주거대구조까지 생성되는 과정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억 광년 길이의 ‘우주 장성(長城)’=거대한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은 왜 하는 것일까.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나온 ‘가상 우주’와 실제 관측되는 우주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현재 하늘의 25%에 걸쳐 지구에서 대략 30억 광년 이내의 우주를 측량하는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라는 세계 최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부터 미국, 독일, 일본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 이 프로젝트에 한국은 지난해 7월부터 공식 참여하고 있다.

은하들은 대규모로 모여 만리장성처럼 생긴 ‘우주 장성’이라는 거대구조를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DSS 관측에서는 이전에 알려진 장성(Great Wall)보다 2배 이상 큰 18억 광년 길이의 새로운 장성이 발견됐다. 이 장성에는 SDSS에서 발견됐다는 의미로 ‘슬론 장성(Sloan Great Wall)’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표준 우주 모형, 중대한 도전에 직면=지금까지 관측 결과를 잘 설명하는 표준 우주 모형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암흑에너지가 전체의 70% 이상, 물질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박 교수팀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 우주는 표준 우주 모형에 따른 것이다. 가상 우주에서는 SDSS 같은 측량을 수없이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가상 우주에서의 측량 결과를 실제 SDSS 관측 결과와 비교함으로써 표준 우주 모형을 검증할 수 있다”며 “현재 예비 결과를 보면 가상 우주에서는 ‘슬론 장성’ 같은 거대구조가 발견될 확률이 매우 작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표준 우주 모형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엄밀히 검토해 봐야겠지만 세계 최대의 관측 자료와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 우주 자료를 모두 갖고 있는 한국의 박 교수팀이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