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화혼 판위량’…누드화속 외침 “나는 나”

  • 입력 2004년 10월 1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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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위량의 자화상중국 여인의 전통 옷을 입은 판위량의 자화상. 그녀는 동양 여인들의 누드를 동양화인 듯, 서양화인 듯, 유화인 듯, 수채화인 듯한 스타일로 그려냈다. 파리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그녀의 작품은 ‘목욕 후’. 사진제공 북폴리오
판위량의 자화상
중국 여인의 전통 옷을 입은 판위량의 자화상. 그녀는 동양 여인들의 누드를 동양화인 듯, 서양화인 듯, 유화인 듯, 수채화인 듯한 스타일로 그려냈다. 파리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그녀의 작품은 ‘목욕 후’. 사진제공 북폴리오
◇화혼 판위량/스난 지음 김윤진 옮김/368쪽 1만5000원 북폴리오

《중국 중진 작가 스난(石楠)은 빈농의 딸로 태어나 공장 노동자로 20년 동안 일했다. 그가 작가로 비약한 것은 나이 마흔 되던 해인 1982년 펴낸 작품 ‘판위량’ 때문이었다. 비천한 창기에서 세계적 여성 화가로 탈바꿈해 불꽃처럼 살다 간 중국 여성 판위량(潘玉良·1895∼1977)을 그린 전기 소설이다. 이 작품은 청명문학상을 받고, 연극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1995년에는 황수친(黃蜀芹) 감독 궁리(鞏리) 주연의 영화 ‘화혼(畵魂)’으로도 만들어졌다. 스난은 이후 역작들을 발표하면서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 안후이(安徽)성 작가협회 부주석으로 발돋움한다.》

스난에게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준 판위량은 중국 여성 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됐다. 판위량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열네 살에 외삼촌 손에 이끌려 창기가 된다. 그녀의 첫 손님은 일본 유학생 출신의 혁명당인 동맹회 회원이자 세관 간부로 부임해 온 판짠화(潘贊化)였다. 판짠화는 그녀에게 까닭 모를 사랑을 느끼고 첩으로 받아들인 후 문학과 예술에 걸쳐 지적(知的)인 세례를 준다.

판위량은 그의 성(姓)을 받아들이고, 그의 친구이자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천두슈(陳獨秀)의 추천으로 상하이(上海) 미술전문학교에서 공부한 후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한다. 귀국 후에는 모교의 교수가 되고 ‘중국 최고 서양화가’로도 뽑히지만 주변에서 과거 창기였다면서 손가락질하고 모함하는 수모를 당한다.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자 후견인인 판짠화마저 위기에 빠지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파리로 돌아가 남은 화혼을 불사른다.

판위량의 누드화 ‘여인’. 1963년작.

그녀는 서양 수채화와 같은 안료로 선명하되 온화한 색감,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線)을 화폭에 담았다. 이 화풍이 특히 돋보인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동양의 여체를 그릴 때였다. 판위량은 목욕탕에 가서도 여체를 그리다가 타박을 받는데 결국 자기 몸을 그리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풍만한 가슴, 백옥같이 부드러운 살결, 균형 잡힌 매끈한 다리가 거울에 비쳤다. 완성된 그림에서는 피부의 탄력과 혈관을 흐르는 혈액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작품 ‘나녀(裸女)’가 출품되자 학교를 뒤흔들었다.”

1920년대 당시 춘화에서나 볼 수 있던 누드를 두려움 없이 고집하는 그녀의 선택에는 사회적 속박에 대한 반역성이 담겨 있다. 자신이 천출(賤出)이며, 노비나 다름없는 첩의 신분임을 잊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신의 몸이었던 것이다.

드라마틱한 예술인생을 살다 간 여성화가로 미국의 조지아 오키프,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우리나라의 나혜석을 떠올릴 수 있다. 판위량의 경우 화혼을 키운 상처가 신분사회의 강한 계급적 압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반향이 크다. 잔인한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화폭에서 무아지경을 찾으며, 인생의 화룡점정을 이뤄 가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스난은 주관성을 절제한 간명한 문장으로 한 예술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전기적 차원에서 복원했으며, 담백한 서술이 오히려 강한 여운을 던진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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