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SF속 어딘가에 미래의 과학이…

  • 입력 2004년 4월 30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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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의 한 장면. 양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로봇 소년 데이비드(가운데)는 진짜 인간이 되면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과학소설계는 인조인간을 과연 인간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테마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의 한 장면. 양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로봇 소년 데이비드(가운데)는 진짜 인간이 되면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과학소설계는 인조인간을 과연 인간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테마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1세기 SF도서관 1, 2/어슐러 르귄 외 지음 이수현 외 옮김/552쪽, 584쪽 각각 1만4000원 시공사 펴냄

◇오늘의 SF 걸작선/브루스 스털링 외 지음 정은영 외 옮김/662쪽 1만8000원 황금가지 펴냄

국내에서 그간 과학소설(SF)은 외면받아 왔다. 이름난 작가도, 두꺼운 독자층도, 두드러진 문학상도 없다.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뜻에서 주로 ‘공상’ 과학소설이라고 불렸다. 과학적 상상력에 몰두하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나 최근 천리안의 과학소설 동호회 ‘멋진 신세계’나 정크SF(junksf.net), SF리더스(sfreader.org) 등 SF 사이트들의 활동이 서서히 탄력을 받고 있다. 발간되는 과학서적 종수와 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과학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나무’ ‘뇌’를 통해 과학소설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21세기 SF 도서관’(이하 ‘도서관’)과 ‘오늘의 SF 걸작선’(이하 ‘걸작선’)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출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소설 선집 번역서들이다. 이 선집들은 전년도 발표작을 대상으로 1년마다 새로 발간된다. 전자는 2000년 발표 작품들, 후자는 2001년 발표 작품들 가운데 뽑아 모은 것이다.

현재의 과학 발달 수준으로 보아 미래에 실현가능할 것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다룬 작품들이 우선 눈에 띈다. 사람이 숨지기 전에 두뇌 속의 기억들을 모두 스캐닝해서 인터넷에 업로드시킨다는 아이디어가 그 하나다(‘도서관’ 중 루셔스 셰퍼드의 ‘빛나는 초록 별’). 그러면 고인(故人)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

뇌에 특수한 컴퓨터 칩을 이식해서 전신의 신경과 통(通)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이 덕분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카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에 걸린 사람들처럼 집단적으로 사이버 도서관이나 사이버 밀림 같은 가상환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성의 컨조이너(Conjoiner·접속자) 종족이 삭막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만든 것이다(‘도서관’ 중 앨러스테어 레이놀스의 ‘화성의 거대한 벽’).

우주선의 악질 항법사 다린의 거짓 사랑에 배신감을 느낀 젊은 여성 치나는 어느 날 과거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우주의 웜홀에서 난파해 돌아온 우주선에서 다린의 시신을 확인한다. 그러나 얼마 후 치나는 살아있는 또 다른 다린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다린의 시신을 실은 우주선은 웜홀의 작용 덕분에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살아있는 다린은 자기가 곧 죽게 될 운명인지도 모른 채 우주선에 탑승한다. 치나는 다린의 운명을 말해줘야 할지, 입을 닫은 채 그와 그야말로 ‘죽음의 키스’를 나눠야 할지 고민한다(‘걸작선’ 중 제프리 랜디스의 ‘도라도에서’).

두 선집 모두 ‘인공지능 로봇’이나 ‘유전자조작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봐야 할까 질문하는 작품들을 실었다. 그렉 이건의 ‘단일체’(‘걸작선’ 중), 브라이언 스테이블포드의 ‘지옥의 스노볼’(‘도서관’ 중) 등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인공지능)’가 다룬 주제이자 ‘피노키오’가 원형인 이야기다.

‘노예를 인간으로 봐야 할까’ 하던 19세기 고민과 비슷하다. 과거 과학소설은 로봇을 로봇이라고만 봤고, 유전자조작 인간은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라고 봤을 뿐이다. 과학이 진화하자 과학소설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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