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스카이KBS 스포츠 야구해설 맡은 최동원씨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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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쇠팔’ 투수 최동원(45·사진)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91년 5월 현역 은퇴후 10년만인 2001년 한화 투수코치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가 한 시즌만에 다시 사라졌던 최동원.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흐른 이달 초 2003시즌 개막에 맞춰 그는 스카이KBS스포츠 해설위원을 맡았다. 그동안 뭘 하며 지냈을까?

“집에서 야구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허허허.” “한 시즌만에 코치직에서 물러난 것이 충격이 컸나보죠?” “충격이라면 충격이지만 그보다는 팀과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니까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점들이 보이데요.”

최동원이 누구인가? ‘너무 잘난 척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 아닌가.그의 입에서 ‘반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 파란만장한 현역생활

그는 ‘잘난 척’할 만하다. 현역 시절의 최동원은 그만큼 대단했다. 84년 롯데의 간판투수였던 그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5번 등판(4번 완투)해 혼자 4승(3완투승 1구원승)을 따낸 것은 전설에 가깝다. 그 해 기록한 223개의 탈삼진은 아직도 프로야구 통산 최고기록. 미국 메이저리그 팀과 최초로 계약을 했던 것도 바로 그다. 최동원은 81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61만달러에 계약했으나 군문제 등으로 계약이 파기됐다.

하지만 최동원의 선수생명은 길지 못했다. 88년 선수협의회 구성을 주도하다 밉보여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 뒤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90시즌을 마치고 은퇴했다. 후회는 없었을까?

“후회되지요. 당시 김성근 감독이 ‘1년만 더 뛰어 달라’고 했지만 제가 그만 두겠다고 고집 부렸어요. 그 게 ‘최동원’이라는 이름석자를 명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 기나긴 야인생활

은퇴하자마자 미국 플로리다로 코치 연수를 떠났던 최동원은 93년 SBS에서 야구해설위원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94년 이마저 그만두고 야구계와 멀어지기 시작한다. 대신 그가 택한 길은 방송출연. 일부 야구인들은 이런 그를 ‘야구인을 욕먹인다’고 비난했다.

“누가 뭐래도 최동원은 평생 야구인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제가 누군지 잘 몰라요. 그래서 쇼프로에 출연해 나를 보여준 것뿐인데 오해를 많이 하더라구요, 찾아다니며 일일이 변명할 수도 없고… ”

이따금 나오는 방송 출연료는 푼돈. 그는 의류업 등 이런 저런 사업에 손대봤지만 재미를 보진 못했다.

“어쨌든 은퇴 10년이 지나서야 코치로 부름을 받은 것은 방송활동 때문이 아닌지요?” “운대가 맞지 않았을 뿐이죠. 하지만 제가 방송인과 야구인이라는 2중 이미지로 비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한화 코치를 그만 둔 이후엔 일체 방송활동을 접었어요.”

“코치직에 아직 미련이 있다는 얘긴가요?” 이 대목에서 최동원의 억양이 높아졌다. “지도자를 하든 해설을 하든 야구인의 길을 걷겠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돼 있어요.”

● 파파보이?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 것 뿐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나의 큰 울타리” 한시대를 풍미한 ‘무쇠팔’ 투수 최동원(왼쪽)이 현역시절 부친 최윤식씨(작고)를 등뒤에서 감싸 안으며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동원은 지난달 17일 아버지를 여의었다. 부친 최윤식씨는 ‘바짓바람’의 원조로 불릴 만큼 아들의 뒷바라지에 극성이었다. 그래서 최동원에게 따라다니는 별명 중의 하나가 ‘파파보이’. 그러나 정작 최동원은 “파파보이라뇨? 자식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신 것 뿐이에요”라며 펄쩍 뛴다.

그는 아버지가 커다란 울타리였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욕먹을 일은 아버지가 대신 했어요. 악역을 자처하신거지요. 아버진 결코 강요하지 않았어요. 이런 저런 길을 제시한 뒤 저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최동원은 외아들 기호(13)에게도 선친이 자신에게 해 준 것과 똑같이 인생을 가르쳐줄 계획이란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기호는 야구와 축구에 관심이 많지만 일단 공부에 전념시킬 예정. “운동만 하면 사회를 너무 모른다는 걸 절감했어요. 이런 저런 정보와 경험을 많이 쌓게 해서 나중에 본인이 선택하게 할 겁니다.”

그러면서 최동원은 한마디 툭 던진다.

“누군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최동원은 어떻게 사나?’라고 하더라구요. 못살 것 같죠? 천만에요, 저도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입니다. 이제 제가 울타리에요.”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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