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일엽스님 禪文集 다시 본다…30주기 맞아 재발간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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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春夏秋冬) 한결같은/그 해인데/생각이 스스로 지어/새해, 새해 하는구나/다만 나 홀로나마/살펴 자재(自在)하리라. ―꾸짖는 한 소리는 너냐 나냐― ’(일엽 선문 중에서)

근대 한국불교가 낳은 최고의 여승으로 일컬어지는 김일엽(金一葉·1896∼1971)스님의 선문집 ‘일엽 선문(一葉 禪文)’이 지난 28일 그의 입적 30주기를 맞아 새로 출간됐다.

일엽 스님의 문집은 그의 입적 후인 1974년 당시 종정이던 서옹(西翁) 스님이 중심이 돼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이라는 이름의 상하 두권으로 간행된 바 있다. 이번에 다시 문도와 법손들이 이 중 그가 입산 후에 쓴 글들만을 모아 한 권으로 출간한 것이다.

충남 예산 수덕사 비구니 암자 환희대에서 일엽스님의 상좌 경희(慶熙·85)스님을 모시고 있는 월송(月松·60)스님은 “그동안 ‘사랑에 실패하고 입산한 글 잘 쓰는 비구니’라는 이미지에 가려 스님의 구도자적 삶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며 “입산 후 법과 선에 관해 쓴 글들만을 모아 일반인도 읽기 쉽도록 30년 이상된 옛 문투를 현대 문법에 맞게 수정 출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엽 스님의 인생은 어느 여배우라도 그 배역을 다 해보지 못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이화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여성으로 화가 나혜석 등과 함께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개화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결혼에 두 번 실패한 뒤 분방한 사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1928년 32세의 나이에 돌연 출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수덕사에 속한 유명한 비구니 암자 견성암으로 입산한 후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고 가르친 스승 만공(滿空) 선사의 뜻에 따라 절필한지 30여년이 지난 뒤에야 수상록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년) ‘청춘을 불사르고’(1962년)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일엽 스님은 춘원 이광수가 ‘한국의 일엽이 되라’며 호까지 지어줄 정도로 빼어난 문재(文才)를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전체 스님들 중에서 드물게 만공 선사의 법을 직접 전수받았으며, 이는 비구니로서는 유일한 일로 알려져 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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