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천둥소리>작가에 대한 소설가 김탁환의 항의문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5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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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특별드라마 <천둥소리>의 표절 파문에 대해 사건의 당사자중 한 명인 소설가 김탁환교수(건양대)가 본사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드라마에서 표절 의혹이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그대로 밝힌 김탁환 교수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동아닷컴은 이번 '표절파문'의 또 다른 당사자인 손영목 작가와 KBS측이 김탁환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나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데로 그 내용도 이 사이트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천둥소리>의 작가, 손영목 선생님께

표절은 작가의 영혼을 훔치는 짓입니다.

지난 수요일(10월 18일) KBS 2TV의 특별기획드라마 '천둥소리'를 보고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손영목 선생님이 극본을 쓰시고 이상우 선생님이 연출하신 드라마 '천둥소리'의 내용이 대부분 저의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푸른숲, 1999년 12월 출간)을 표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작가적 양심의 문제이며 또 저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입장을 표명하기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 이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허균과 같은 '조숙한 근대인'을 이제 안방에서도 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작년에 제가 쓴 장편소설도 그런 저변을 넓히는데 작은 기여를 하였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저께 저녁부터 예고편을 보면서는, '내 소설과 참 비슷한 분위기네.'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만, 참조한 것이겠거니 여겼지요. 그러나 이 드라마는 참조의 수준을 넘어, 4년 동안의 자료 조사와 1년 동안의 집필 기간을 거쳐 발간한 저의 역사소설 '허균, 최후의 19일'을 완전히 훔쳤습니다. 지금부터 증거 몇 개만 우선 들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허균이 의금부에 갇혀 처형당하는 8월 16일부터 24일까지의 기록은 밋밋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날 뜬금 없이 허균이 잡히고 또 일주일만에 죽임을 당하지요. 지금까지 허균의 최후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혁명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는 입장과 이이첨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죽었다는 입장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습니다. 둘 중에서 저는 허균을 혁명가로 보는 시각을 택했습니다. 허균을 통해 80년대 반체체 운동의 명암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허균을 혁명가로 그리려고 하니, 혁명을 구체적으로 모의하고 준비할 인물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허균과 함께 처형당한 것으로 실록에 나오는 현응민, 우경방, 하인준 등은 그저 허균을 따라 다니는 똘마니들이었으니까요.

모름지기 혁명을 하려면 높은 이상과 탁월한 통솔력을 지닌 인물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혁명에서 이탈하여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는 인물 또한 혁명을 다루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요. 그래서 저는 허균을 도와 혁명에 앞장서는 혁명군 대장 박치의와 혁명의 대열에 동참했다가 이탈하는 배신자 이재영이란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혁명가와 배신자, 그것은 또한 북인의 실력자 이이첨과 결탁한 마지막 5년 동안, 허균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던 고뇌를 외부의 두 인물로 분화시킨 것이기도 하지요.

손영목 선생님도 사료를 찾아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두 인물은 허균과 젊은 시절부터 깊은 교분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박치의는 허균이 죽기 5년 전에 일어난 소위 칠서의 옥(허균과 친한 일곱 서얼이 반란을 꿈꾸었다 하여 시작된 옥사, 1613년)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후 영원히 행방불명된 위인입니다. 그후로 그가 도성에 나타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요. 그러니까 박치의를 허균이 죽기 전날 밤에 도성에 둔 것도, 또 박치의가 혁명군을 이끌고 의금부를 친 것도 모두 제가 상상해서 꾸민 것입니다. 손영목 선생님은 박치의란 인물이 꽤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혁명군의 대장이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요. 허나 드라마에서 상영된 박치의의 활동은 '허균, 최후의 19일'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제 소설을 제외하곤 그 어느 책에도 박치의가 허균이 죽던 1618년 도성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꾸민 박치의의 1618년 행적을 손영목 선생님이 그대로 가져다 쓰신 것입니다.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제 소설의 첫장에 제시된 지도에 박치의의 혁명군이 움직이는 경로와 그 일시까지 소상히 적힌 것을 보시고 이 모두를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라도 믿으셨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도성전도'라는 지도까지도 모두 제가 꾸민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더 지적할까요? 드라마를 보니 박치의의 호가 '파암(破岩)'으로 여러 번 불리더군요. 손영목 선생님은 '허균, 최후의 19일' 1권의 첫머리에 나오는 '주요인물 소개'를 보셨나 봅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지요. '박치의 : 무륜당의 일곱 서자 중 한 사람, 호는 파암. 허균의 가장 든든한 혁명 동지이다' 그래서 손영목 선생님은 당연히 박치의의 호가 파암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제 소설을 읽어보면 허균이 또 박치의에게 그 호를 붙여주었다는 언급도 나오지요.(1권, 14쪽)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파암'이란 호는 허균이 붙인 것이 아니라 제가 만든 것이거든요. 초고에는 '천강(天江)'으로 지었는데, 소설을 읽어본 친구들이 혁명군 대장의 이름치고는 너무 낭만적이라고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필름을 뽑기 직전 푸른숲 출판사에 가서 마지막 교정을 보던 그날, 이런저런 부분을 다시 수정하느라 교정을 끝마치지 못한 죄로 낯선 신촌의 여관방에 뒹굴게 되었을 때, 박치의의 호를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뜯던 새벽 무렵에서야 '파암'으로 바꾼 것입니다. 혁명군 대장이니 호가 '바위를 부순다'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제가 지었지만 썩 그럴듯한 호라고 생각했는데, 손영목 선생님도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헌데 파암이라는 그 호 역시 제가 지었다는 것을 이제 아셨을 테니, 이 부분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드라마의 첫 장면에서 허균을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이재영의 배신은 또 어떻습니까? 손영목 선생님께는 이재영이라는 인물도 퍽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허균과 함께 시를 지었고 훗날 스승인 손곡 이달의 문집을 함께 엮는 죽마고우이니, 이재영은 당연히 허균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요. 헌데 손영목 선생님이 한 가지 간과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이재영이 허균을 배신한다는 설정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 역시 오로지 제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꾸며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객관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인 사실도 아니지요. '조선왕조실록'이든 야사든 논문이든, 이재영과 관련된 그 어떤 글에도 이재영이 허균을 배신했다는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허균, 최후의 19일'에서만 그렇게 설정되어 있지요.

제가 왜 이재영을 그렇게 설정했는지 궁금하시죠? 그것은 허균이 옥에 갇히고 능지처참을 당하는 동안 이재영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민인길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 의해 이재영도 허균과 한 통속이라는 자백이 올라오지만 광해군이 묵인한다는 점, 그리고 허균은 죽은 다음 해부터 이재영이 이이첨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점을 우연히 '조선왕조실록'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검토하면서 참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허균의 죽마고우 이재영은 왜 허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허균이 잡혔다면 그도 당연히 잡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어떤 이유로 허균이 죽은 다음 이이첨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일까? 이런 물음들을 던진 끝에, 저는 이재영에게 제가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에서 미리 비워두었던 배신자의 역할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이재영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이런 설정을 하던 날 밤 이재영을 위해 술을 한 잔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건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짓입니다), 소설의 완성을 위해 혁명의 배신자는 꼭 필요했으니까요. 지금도 이재영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반체제 운동 인사들의 변화(혹은 변절)와 맞물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손영목 선생님은 이재영이 허균을 배신하는 이 대목 역시 앞의 박치의의 경우처럼 김탁환이라는 소설가가 객관적 사료에 근거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저의 순수한 상상의 소산입니다. 다시 말해, '허균, 최후의 19일' 2권의 282쪽에서 283쪽에 나오는 이재영의 배신 장면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한 것이며, 손영목 선생님은 지식인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해 김탁환이 창조한 허구적 설정을 마치 사실인 양 그대로 가져다가 쓰신 것입니다.

표절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돌한을 볼까요. 제 소설의 '주요인물 소개'에는 돌한이 '허균의 충직한 하인'으로 나오지요. 여담입니다만, 저는 '허균, 최후의 19일'의 판을 다시 찍을 때 이 '돌한'의 이름을 바꿀 작정이었습니다. 소설의 발문을 써주신 인하대학교 최원식 선생님의 지적 덕분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실록에 나오는 '돌한'에서 '한(漢)'은 '거한'처럼 단지 사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돌한도 그냥 '돌놈'이나 '돌쇠'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하셨지요. 저 역시 종의 이름 치고는 돌한이 너무 의젓한 이름이다 싶었는데, 그 말씀을 접하고 보니 작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꼭 돌한을 돌놈이나 돌쇠로 고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헌데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제가 고치려고 하는 그 틀린 이름까지도 그대로 가져 가서 쓰셨군요.

돌한이 의금옥을 부수고 혁명동지들을 구하러 갔다가 장렬하게 죽는 장면에서 또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돌한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 역시 어떤 사료에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실록에 돌한이 '허균의 종이며, 뛰어나고 날래고 용감하'기에 잡아들여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객관적 사실로 말하자면 위의 기록이 언급된 8월 23일(허균이 죽기 전날)에 돌한은 체포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돌한을 이렇게 시시하게 잡히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허균의 충직한 종이니 허균과 함께 혁명을 도모하다가 허균을 위해 죽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지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는 위배되지만 돌한이 8월 23일 체포되는 것이 아니라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단 한 줄의 기사로부터 비롯된 상상의 결과이지요.

박치의와 돌한이 의금옥을 습격한 것이나 의금부의 군졸들에게 포위되어 돌한은 죽고 박치의만 살아서 탈출하는 장면을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어디서 보셨는지요? 그것은 '허균, 최후의 19일' 2권의 229페이지에서 300페이지에 상세히 나옵니다.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 역시 그대로 가져다 쓰셨군요. 제 소설에서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어떤 자료를 통해 돌한이 의금부 뜰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박치의는 무사히 탈출하는 것을 알게 되셨는지 설명해 주십시오.(박치의는 이 시기에 도성에 없었으니 설명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겠군요)

자, 정리를 해볼까요?

선생님은 혁명군 대장 박치의, 혁명의 배신자 이재영, 허균의 충직한 하인 돌한 등 허균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성격, 외모, 죽음의 현장 전부를 제 소설에서 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함께 모아 혁명군 대장(박치의. 저는 박치의를 가끔 '태백산맥'의 염상진과 비교해보곤 했습니다)-혁명의 이데올로그(허균)-혁명의 배신자(이재영)라는, 허균의 혁명적 삶을 지탱하는 전체적인 황금삼각구도(소설을 집필하면서 저는 이 세 명을 묶어 이렇게 불렀습니다) 자체도 저의 소설에서 가져가신 것이지요. 어떤 부분이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며, 또 어떤 부분이 김탁환이라는 소설가에 의해 순전히 창작된 대목인가를 손영목 선생님께서 구별하실 수만 있으셨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혁명의 동지도 혁명의 배신자도 다 제가 창조한 인물들이니, '천둥소리'는 완전히 저의 소설로 포위된 형국입니다. 50부작이므로 우리의 허균이 그 사이에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결국 이 첫 부분의 황금삼각구도가 기본이 되며 또 이곳으로 환원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측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삼각구도는 오로지 '허균, 최후의 19일'에서만 나옵니다.

당장 이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만류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차피 '허균, 최후의 19일'을 가져다 베낀 것이 확실한데, 좀더 시간을 끌면 손영목 선생님의 잘못이 더욱 많이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이지요. 허나 저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또한 더 이상 손영목 선생님께서 실수를 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박치의의 호를 '파암'이라고 반복해서 부르면서도,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김탁환이란 소설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송작가 자신이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한 작가의 상상물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료라고 시청자들에게 강변하는 오류를 낳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앞으로 차차 더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후에 손영목 선생님께서 대본을 대폭 바꾸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물론 했습니다. 첫부분은 베꼈지만 나머지는 다르다고, 치졸하긴 해도 표절의 굴레에서 빠져나가고 보자는 생각이 들 때 사용되는 편법이지요. 허나 그렇게 되면 이미 수요일에 등장한 박치의와 이재영과 돌한은 모두 미아가 되겠군요. 아무리 중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끌어들여도(어떤 친구는 이것을 물타기라고 하더군요), 앞에서 제시한 바 있고 또한 제 소설의 핵심축이기도 한 박치의-허균-이재영의 황금삼각구도는 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드라마를 고치시겠다면, 그것까지 제가 간섭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렇게 바꾼다면 그야말로 드라마는 용두사미가 되고 전체적인 통일성도 파괴될 것입니다.

어쩌면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허경진 선생님이나 이이화 선생님의 저서들과 함께 제 소설을 단지 참조만 하였다고 변명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제가 앞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들은 다른 분들의 저서에는 없습니다. 그분들은 철저하게 사료에 입각해서 글을 쓰시는 학자들이시니까, 박치의를 혁명군 대장으로 둔갑시켜 돌한과 함께 도성을 휘젓고 다니게 만든다든지, 그저 침묵하고 있었던 이재영의 입(아가리라고 쓰고 싶습니다만)을 벌려 배신의 말을 토하도록 만들지는 않으시지요. 이런 역사의 구멍, 어쩌면 영원히 밝혀질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그 암흑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우고 글로 옮기는 것이 역사소설가라는 족속들의 작은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설명을 드렸는데도 이 드라마가 제 소설을 단지 참고한 것 뿐이라거나 영향을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참조'의 사전적 정의가 소설의 전체 구조와 등장 인물(그것도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든)을 몽땅 훔쳐가서 멋대로 짜집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끝으로 개인적인 느낌을 한 가지만 덧붙이려고 합니다. 이 힘든 편지를 쓰도록 만든 동력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 소설을 12월 초에 탈고한 후 올해 1월 목수술을 받았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목이 갈라지면서 피를 토했거든요. 허균을 그 아득한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고가면서, 박치의를 통해 영웅적 지식인의 극단을 보여주고 이재영을 통해 비참하고 소심한 지식인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근 보름동안 하루에 담배를 다섯 갑 이상 피운 결과였습니다.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그저 가볍게 드라마에 필요하니까 제가 창조한 인물들을 가져가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이 인물들에게 저의 피와 땀과 눈물,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혀놓았습니다만 80년와 90년대를 지나치며 경험했던 분노, 슬픔, 용기, 부끄러움 따위가 이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도 이런 자의식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손영목 선생님이 훔쳐 가신 것은 단지 허균과 그 주변 인물들이 아니라 저의 80년대와 20대 청춘 그 자체입니다.

이제 손영목 선생님께서는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과 지금 저의 참담한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시리라고 봅니다. 언제 쯤이면 대중문화판에서 표절이란 단어가 사라지게 될까요? 막상 그 시궁창에 빠지고 보니, 작곡가 김형석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뜻이었지요. '카피(copy)한 것과 창조한 것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앞의 것은 죄악이며 뒤의 것은 예술품이다. 카피(copy)를 관행이라고 우기는 작곡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 관행과 싸워야 한다.' 이제 소설가의 작품을 표절하고서도 그 원작을 밝히지 않는 일부 드라마들의 관행과 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영목 선생님의 작가적 양심을 믿으며 응답 기다리겠습니다.

김탁환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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