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 입력 2000년 2월 2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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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 ▼

"1920년대에 여성 고백체 소설이 폄하되고 매장당한 것은 당시 논리에 의하면 당연한 것이었고 지금 재조명되는 것은 근대를 극복하려는 모색기에서 또한 당연한 것이다.”

1920년대 근대의 물결과 함께 시작된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거의 완결됐다. 그리고 1980∼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맞으며 핵가족마저 해체되며 새로운 가족의 형식이 모색되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교수인 저자는 이 시대 가족의 해체를 바라보며 전통적 가족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20년대의 신여성들을 떠올린다.

근대적 문물의 유입과 자유연애의 물결 속에 등장한 신여성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틀 안에서 헌신과 순종 및 정절을 요구하는 제도였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도가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도 자유연애를 주장했던 남성들이 결혼과 함께 가부장적 권위로 복귀하는 수순을 밟아갈 때, 신여성들이 설 자리는 그곳에 없었다.

당시 염상섭 김동인 등의 남성작가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의 여성작가들이 시도했던 고백체 소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기반으로 한 성적인 금기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간통을 고백했던 나혜석, 배신당했던 일을 고백했던 김일엽, 성폭행의 경험을 고백했던 김명순. 절절하게도 자신의 아픔을 고백했던 이들은 ‘탕녀’로 낙인찍히며 문학사에서 매장된 반면 의사(擬似) 고백을 했던 염상섭이나 김동인 등의 남성작가는 근대 고백소설의 모범으로 문학사에 기록됐다.

고전문학에는 백수광부의 처, ‘정읍사’의 아낙네를 위시한 민요 속의 민중 여성들, 황진이를 위시한 기생들, 가사와 시조 수필을 쓴 양반여성 등 발군의 여성작가들이 많았지만 근대에 이르면 걸출했던 한국 여성들은 문단의 중심부에서 사라진다. 이것은 어쩌면 “남녀의 이분법 속에서 타자로 존재했던 후자의 위치가 문화생산의 제도에 반영된 것이나 아닐지” 라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추론’한다.

저자는 이제 탈근대라는 1990년대 이후 ‘근대성’의 금기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고백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상품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음에 주목한다. 400쪽 1만3000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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