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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아버지들 ②]「미스터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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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아버지들 ②]「미스터 맘」

입력 1998-05-05 21:46수정 2009-09-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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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씨, 오늘 어디 나가요?”

화장대 앞에 앉아 출근채비를 하던 아내 이수정씨(32·N의류업체 근무·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개를 돌려 침대위에 누워 잠이 덜 깬 남편 한정석씨(35)에게 말을 건넨다.

“아니…, 응…, 왜?”

“오늘 친정엄마가 큰오빠집에 가봐야 한대요. 지훈이 좀 봐줄 수 있어요?” “오후에 어디 좀 들러볼까 했는데…. 그러지 뭐.”

2월초 증권회사에서 정리해고된 한씨. 맞벌이하는 아내는 요즘들어 옆단지 아파트에 사는 친정어머니를 대신해 네살배기 외동아들을 돌봐달라는 주문이 부쩍 늘었다.

“정석아, 아빠랑 잘 놀고 있어.” “엄마, 다녀오세요.” “운전 조심하고…. 일찍 일찍 다녀.” 익숙하지만 왠지 어색한 분위기의 대사들.

‘오랜만에 대청소나 해볼까, 전에 비해 아빠를 잘 따르는 지훈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나 다녀올까’하고 멍한 머리를 돌려본다.

‘미스터 맘(Mr.Mom)’, 엄마같은 아빠. ‘IMF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사회 소시민 아버지 중 상당수가 맞게 될 운명이다.

아버지재단의 연구분과위원장 정채기씨(남성학자). “IMF시대가 끝나도 맞벌이를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가정이 늘어날 것이다. 서구처럼 엄마의 역할 중 상당부분이 남편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가 ‘미스터 맘’이 많아질 것이다.”

‘구조조정’의 시대. 껍데기는 가고 거품이 걷혀버린 우리사회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 될까. 서구의 남성학자들은 고도 산업사회에는 ‘미스터 맘’ ‘돈지갑형 아버지’ ‘방치형 아버지’ 등 세가지 유형의 아버지만 남는다고 설명한다. 돈지갑형 아버지“용돈 좀 주세요.” “뭐에 쓰려고? 얼마나 필요한데?”

자녀가 보기에 아버지는 ‘열린 지갑’. 돈지갑(Purse)을 통해 자녀와 관계를 형성하는 아버지가 주로 나누는 대화는 이처럼 간단명료하다.

‘위로,위로’ 계속해 올라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사회. 아내, 자녀와의 정서적 유대는 포기하고 가족의 생존 문제에 전념하게 된다.IMF시대를 겪으며 중산층이 줄고 상류층과 하류층으로 양극화가 진행될 경우 상류층 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쉽게 찾아보게 될 듯.방치형 아버지“내가 낳았다고 책임까지 져야 하나….”

어깨를 짓눌러온 가장의 책임감. 더이상 견뎌야 할 이유와 미래를 찾지 못한다. 탈출…. 거리를 헤매는 보헤미안, 지하철역 노숙자로 전락한다. 미국에는 2백만명이 넘는 ‘홈리스(Homeless) 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씨는 “서구의 ‘홈리스아버지’가 제멋대로의 삶을 영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 최근 우리사회에 증가하는 ‘방치형 아버지’는 경제적 충격에 의한 ‘병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제삼의 대안?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다운시프팅(Downshifting)’이 유행하고 있다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가 보도. 다운시프팅이란 자동차의 기어를 낮은 단계로 변속한다는 뜻. 출세나 돈벌이에 매달려 숨가쁘게 달리는 대신 인간답고 여유있게 살기 위해 삶의 속도를 줄이는 생활방식이다.

‘아버지의 전화’의 정송대표. “우리의 경우 ‘다운시프팅’은 쉽지 않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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