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감동, 원작 읽으며 다시 한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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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보고 원작-대본집 찾는 관객들

1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1945’ 희곡선을 구매한 관객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배삼식 극작가(오른쪽).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1945’ 희곡선을 구매한 관객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배삼식 극작가(오른쪽).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연극을 보며 감정이 많이 이입됐어요. 대사를 찬찬히 곱씹어 보고 싶어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4일 연극 ‘1945’가 끝난 후 대본이 실린 희곡선을 구매한 박재형 씨(23)는 이렇게 말했다. 배삼식 극작가의 신작인 ‘1945’는 만주에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조선인들의 애환과 갈등을 생생하고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이날 판매된 희곡선은 50권 가까이 됐다. 책을 산 관객들이 배 작가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선 풍경도 연출됐다. 안선희 씨(28·여)는 “위안부였던 명숙이 ‘어떤 지옥도 우릴 더럽히지 못했어’라고 말한 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전체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 책을 샀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매 공연마다 40∼50권씩 판매되고 있다. 1000권을 찍었는데 추가 인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의 원작이 된 시를 비롯해 희곡, 대본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11일 막이 오른 뮤지컬 ‘캣츠’의 원작인 T S 엘리엇의 동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도 판매가 껑충 뛰었다. 임선아 시공주니어 과장은 “‘캣츠’ 개막을 전후해 최근 2주간 판매된 물량이 평소의 3배에 이른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반 전문매장 풍월당이 오페라 총서 1호로 지난달 출간한 베르디의 ‘아이다’ 대본집(이기철 번역·박종호 해설)은 한 달 만에 830권이 판매됐다. 이탈리아어를 우리말로 옮긴 것. 오페라 공연이나 DVD의 우리말 자막은 영어를 번역한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수준도 들쭉날쭉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오페라 대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 작품이자 하나의 고유한 장르로, 오페라의 진가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출간했다”고 말했다. 풍월당은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바그너의 ‘링’ 대본집도 차례로 출간할 예정이다.

올해 3∼5월 공연된 연극 ‘씻금’, ‘오구’, ‘초혼’의 희곡을 묶은 ‘굿과 연극’(이윤택 엮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공연 기간에 극장에서 판매했는데 준비한 270권이 모두 나가 공연 막바지에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공연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관객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관객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작품에 담긴 내용과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공연, 책 등을 통해 예술 작품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즐기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연극 1945#희곡#대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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