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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밥상 차려준 나, 욕하면서 그를 닮진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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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밥상 차려준 나, 욕하면서 그를 닮진 않았나”

뉴스1입력 2018-01-05 14:05수정 2018-0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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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류은숙 등의 에세이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설을 맞아 통인시장을 방문한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뉴스1

‘용산참사 5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주말 알바를 하는 나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 MB의 밥상을 차려야 하다니.(중략) 난 보고야 말았다. 선글라스를 낀 그가 식당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것을. “에이 제길.”’(본문 88쪽)

이명박 전 대통령(MB)에게 밥상을 세 번이나 차려준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인권운동가다. 14년간 식당 주방에서 알바를 하던 류은숙 씨는 2014년 1월 갑자기 식당에 들이닥친 MB 일행에서 정식을 차려준다. 동료들에게 믿기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모바일 메시지로 호소하자 “오 마이 갓! 침 뱉어!”부터 더 심한 각종 살벌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그후 세 모녀 자살사건이 있었던 무렵과, 장애인 야학 교장인 인권운동가가 장애인의 평등을 외치다가 감옥에 들어가 노역살이하던 즈음에도 MB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세 번째 밥상을 차리며 그는 “당신은 꼭 감옥에 가야 한다”고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류은숙, 홍세화, 천주희, 정지우, 김민섭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가로, 혹은 필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돌아보는 책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낮은산)를 펴냈다. 세월호의 비극을 겪으면서 각성하고, 힘을 모아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기쁨을 뒤로하고 이제는 우리 안의 모습을 찬찬이 들여다 봐야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 News1
책은 생활의 감각을 담고 있어 매우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묵직하고 깊은 철학적 고민의 단초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류은숙 활동가는 MB를 통해 ‘우리가 그를 욕하면서 닮아버리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 신화’를 쓴 그의 삶에 대해 “그래도 열심히 살지 않았냐”고 옹호하면서 부패와 타락의 증거에도 대통령으로 찍었던 데는 그를 닮고자 하는 ‘열심 숭배’가 밑바탕에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열심 숭배 하에서는 효율적이지 못한 존재는 구박덩어리가, 인권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악에 대한 척결 대신에 다른 이들의 태만을 타박하고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내는 우리 안의 괴물에는 MB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성찰이다.

이밖에도 천주희는 우리 사회가 지닌 장애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서 ‘다수라는 집단의 편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문화평론가 정지우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노동 재해를 열거하면서, 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사고하지 않은 결과 ‘인간의 자리’를 어떻게 상실했는지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김민섭은 자신의 아이 이름을 ‘린’이라고 짓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주며 ‘사회적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환기한다. 처음 맞닥뜨린 ‘사회’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이웃 린’이라는 한자에 주목했던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필자들의 삶에서 나온 값진 성찰은 다음과 같은 반성 덕분에 한번 더 깊어진다.

‘모든 증언에는 공백이 있다. 증인은 살아남은 자들이며, 그래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특권을 누린 자들일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의 평범한 수인(囚人)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없다. (…)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윤리적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역사에는 미처 우리가 기록하지 못한 수많은 공백이 있다.’(‘서문’ 중에서)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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