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심 해석 거부… 폭력적 제국주의 고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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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제국의 구조’

21세기 첨단 과학문명의 시대에 웬 제국 타령인가. 여기 19세기 제국주의까지 더하면 ‘공자 왈 맹자 왈’ 취급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 이름을 보게 되면 책장을 다시 한 번 들추게 된다.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된 일본의 저명 사상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도서출판 b) 한국어판이 발간됐다. 문학, 철학, 역사, 사회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작을 내놓은 그가 전작 ‘세계사의 구조’에 이어 제국의 역사를 다뤘다.

가라타니에게 제국과 제국주의는 과거의 낡은 유산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도 그 속성을 보면 제국주의의 한 부류라고 말한다. 지금 또다시 제국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고진은 제국과 제국주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 원나라 등 역사 속 제국은 만민법(국제법)과 세계 종교를 통해 다민족사회를 안정적으로 통합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초반에 이민족 출신인 막시무스가 팍스로마나의 가치를 새기며 전장에 뛰어드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민족개념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가 단순히 확대된 상태에 불과하며, 다른 국가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여기서 가라타니의 주장이 차별화하는 것은 유럽 중심의 제국 해석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독일 학자 해나 아렌트도 제국과 제국주의의 분리를 주장했지만 서양적 편견에 휩싸여 제국이 로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나 이집트, 원나라 등이 일종의 미개한 전제국가로 폄하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역사기록을 고찰한 가라타니의 결론은 이들 동양 제국이 분명 ‘제국의 원리’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리스 로마문명도 동양 제국의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최근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폐해를 극복하려면 역사 경험 속에서 제국의 원리를 깊이 곱씹어 볼 것을 주문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가라타니 고진#제국의 구조#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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