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유발 하라리 교수 “더 많은 행복 찾는 자본주의… 대안 없으면 재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 인터뷰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성장’을 대신할 수 있는 행복의 패러다임을 찾지 못한다면 환경적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토그래퍼 라미 징어 제공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성장’을 대신할 수 있는 행복의 패러다임을 찾지 못한다면 환경적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토그래퍼 라미 징어 제공
2016년도 절반 넘게 지나갔다. 상반기에 일어난 일들을 차분히 돌아보자. 인류 역사가 큰 전환점에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줄만 알았던 세계화의 물결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그것도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 ‘우주보다 심오한 세계’라는 바둑판 위에서 인간이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에 패배하는 일도 벌어졌다.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0에 가깝게 떨어졌다. 줄어드는 줄 알았던 인종 간의 갈등도 다시금 커지고 있다.

과연 2016년은 인류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김영사·2015년·사진)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에게 물었다. 하라리 교수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책 ‘사피엔스’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 여름휴가 중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4호에 실린 그와의 e메일 인터뷰를 요약 소개한다.

―‘사피엔스‘에서 당신은 인류가 현재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인류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제는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행복감을 얻기 위한 방법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어차피 무언가 더 얻을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가 끝도 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 건설됐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도록 부추긴다. 자본주의적 행복의 핵심은 삶의 질이 아니다.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상황이 객관적으로 좋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계속 개선되고 있어야만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오늘날 미국, 영국, 한국과 같이 산업화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다. 굶주림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비만으로 죽을 가능성이 더 높고, 전염병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노화로 죽을 가능성이 높다. 또 군인이나 범죄자에게 살해될 가능성보다 자살로 삶을 마감할 가능성이 더 높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알카에다의 공격에 죽을 가능성보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을 가능성이 1000배 정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만족스럽다고 느낀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거나, 영국이 EU에서 떠나야 한다고 투표한다. 왜? 인간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생활 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행복의 아킬레스건이다. 만일 30억 명의 중국인, 인도인, 아프리카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미국인들만큼의 생활 수준을 누려야 한다면 지구가 몇 개쯤은 더 필요할 것이다. 행복에 대한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는 환경적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당신은 자본주의에서 필수적인 ‘신용’은 각각 오늘과 내일의 경제규모(파이) 크기의 차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경제 성장률이 0에 가까워지면 신용이 사라지고 투자와 생산의 선순환 관계가 깨져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다. 정말로 이처럼 어두운 미래가 올 가능성이 있는가.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경제 시스템뿐 아니라 정치 시스템도 무너질 것이다. 현대의 정치 시스템 역시 ‘끊임없는 성장’이라는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터키든 세상의 모든 나라가 성장에 목을 매고 있다. 정치인들이 하는 약속을 지키려면 경제 성장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현재의 기술을 가지고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경제 성장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경제적 재앙이냐, 환경적 재앙이냐를 골라야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지금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수십 년 안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고, 인류가 그걸 어떻게 풀어 나갈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구온난화 없이 경제도 계속 성장하게 할 수 있는 기적적인 과학기술을 발견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사피엔스’에서 당신은 정치적, 윤리적 장애물만 없다면 인간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인간 뇌 용량의 한계도 있을 수 있다. 100년 전의 박사과정 학생보다 오늘날의 박사과정 학생이 머리에 담아야 하는 지식의 양이 훨씬 많다. 어쩌면 우리의 뇌는 신이 되기엔 너무 작을 수도 있다. 수백만 년이 지난다 해서 개미가 고양이로 진화하지는 않지 않는가.

“실제로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에 거의 이르렀다. 이 한계를 깨고 인간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인간이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다. 미래의 인간은 현재 신의 영역이라 생각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생물체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창조하거나, 가상현실에 직접 정신적으로 접속하거나, 수명을 극단적으로 늘리거나,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

“역사상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단 하나만은 그대로였다. 인간 그 자체다. 현대인은 석기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신체와 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역사상 최초로 인간 자체가 급진적인 혁명을 겪게 될 것이다. 인간 사회와 경제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이 유전공학과 나노공학,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21세기 경제의 주요 생산물은 신체와 정신이 될 것이다. 흔히 미래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그린다. 레이저 총이나 똑똑한 로봇, 광속으로 여행하는 우주선 등이다. 하지만 미래 기술의 혁명적인 잠재력은 우주선이나 무기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호모사피엔스 그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현대사회의 두 기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은 책 ‘사피엔스’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과학과 산업혁명을 주요 주제로 다룬 것과 대비된다.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가.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명된 것이고 세상에 가져온 영향도 아주 작기 때문이다. 20세기 동안 민주주의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치 시스템이 됐지만 이제는 그 힘을 잃고 있다.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계속 지배적인 시스템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베스트셀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