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오전에 글 쓰고 오후엔 사랑하며 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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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의 작가 아멜리 노통브

아멜리 노통브는 “세계 문학의 수도여서 파리에 주로 머물지만 물가가 비싼 데다 절대 상냥하지 않은 파리지앵과 부대끼며 사는 건 매우 힘들다. 파리지앵은 프랑스인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거 부디! 기필코! 써 주세요”라며 익살스럽게 눈을 찡끗거렸다. 열린책들 제공
아멜리 노통브는 “세계 문학의 수도여서 파리에 주로 머물지만 물가가 비싼 데다 절대 상냥하지 않은 파리지앵과 부대끼며 사는 건 매우 힘들다. 파리지앵은 프랑스인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거 부디! 기필코! 써 주세요”라며 익살스럽게 눈을 찡끗거렸다. 열린책들 제공
“안녕하세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를 검은색 핀으로 묶은 그가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아멜리 노통브(49)였다. 파리 알뱅 미셸 출판사에서 17일(현지 시간) 만난 그는 검은색 치마와 재킷을 입고 있어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이어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한국에서 근무했고 삼촌이 6·25전쟁에 참전했어요.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자주, 많이 먹는답니다.”

1층 로비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두 평(6.6m²)이나 될까.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전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편지와 서류, 각국어로 번역된 책이 위태롭게, 사람 키 높이만큼 여러 줄로 쌓여 있었다.

벨기에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라오스 등에서 자랐다. 글은 프랑스어로 쓴다.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그는 ‘시간의 옷’으로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다. ‘두려움과 떨림’은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받았다. 속도감 있는 대화체에 잔인함과 냉소, 유머가 어우러진 작품은 45개 언어로 번역돼 모두 1600만 부가 판매됐다. 매년 책을 낼 정도로 글쓰기광이다.

“매일 오전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써요. 지금까지 85편을 썼는데 24편만 출간됐어요.”

그 비결을 물었다. “글쓰기는 극한 스포츠와 같아요. 운동선수가 하루 쉬면 근육이 달라지듯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다음 날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작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제게 부여된 ‘의무’예요.”

체력은 타고났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시 벨기에 지역 사람을 ‘거대한 바바리아인’이라고 불렀는데 진짜 딱 맞는 표현이에요.(웃음) 나이가 들수록 기운이 떨어지는 게 두렵지만 현실은 직시해야죠.”

그는 오후 1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연인과 지낸다. 인터뷰 중 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오전에는 터프하게, 오후에는 달콤하게, 매일 두 가지 인생을 산다”며 깔깔 웃었다.

때마침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화제였다. 알파고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화 분야까지 인공지능이 점령한 데 경악했어요. 나는 ‘기계치’라 휴대전화도 없고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는걸요.”

이어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지혜, 직관력, 인간미 등 인간만의 특성을 공고히 하려면 신문과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연처럼 직원이 문을 열고 신문을 건넸다.

하반기 국내에 출간될 예정인 ‘페트로니’는 작가를 꿈꾸던 페트로니라는 여성을 1997년 만나 나눈 우정과 질투를 그렸다. ‘푸른 수염’을 통해 샴페인을 예찬했던 그에게 페트로니는 샴페인 친구였다.

“샴페인은 진심을 나눌 친구와 꼭 함께 마셔야 해요. 파리지앵은 늘 화가 나 있고, 공격적이라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데 페트로니가 다가왔죠.”

그는 아직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지난달 브뤼셀도서전에서 그를 봤다는 한국 팬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통브를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썼다. 이를 알려주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어머나!”를 연발했다.

“핑계 같지만 정말 바빠요. 프랑스를 포함해 세계 46개 출판사와 일해요. (또 전화가 왔지만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죽기 전에 한국에 꼭 갈게요. 약속해요!”

:: 아멜리 노통브는… ::

―1967년 일본 고베 출생
―벨기에인, 프랑스에서 활동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년) 발표
―‘적의 화장법’, ‘시간의 옷’(공쿠르상 후보), ‘두려움과 떨림’(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 ‘오후 네 시’(파리 프르미에르상) 등 매년 한 작품씩 발표
―45개 언어로 번역, 1600만 부 판매

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멜리 노통브#살인자의 건강법#적의 화장법#시간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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