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개의 동행 3만6000년…“나쁜 기운 막는 동물 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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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무술년… 인간과 개의 문화사

불교 행사에 사용되는 도량장엄(道場裝嚴·불교 무대미술)의 하나인 십이지신번(十二支神幡) 가운데 술신(戌神) 
초두라대장(招杜羅大將).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용맹한 개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만봉 스님의 1977년 작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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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행사에 사용되는 도량장엄(道場裝嚴·불교 무대미술)의 하나인 십이지신번(十二支神幡) 가운데 술신(戌神) 초두라대장(招杜羅大將).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용맹한 개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만봉 스님의 1977년 작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인간이 개를 바라보면, 개도 인간을 바라보고 눈을 맞춘다. 이것이 단순히 반려동물과 감정을 나누는 행동이 아니라 오늘날의 인류를 만든 중요한 사건의 하나라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의 시작을 앞두고 인간과 개의 역사에 대한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현생 인류는 살아남았는가?’는 인류학의 오랜 질문이다. 최근 발간된 ‘침입종 인간’(팻 시프먼 지음·푸른숲)은 그 답으로 ‘현생 인류와 개의 동맹’을 꼽는다. 책에 따르면 약 5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에 도착한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종류의 먹잇감을 사냥하며 경쟁했다. 그러나 인류는 적어도 3만6000년 전에 늑대를 ‘늑대-개’(원시 개)로 길들이면서 더 다양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됐고, 사냥 성공률도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이다.

왜 늑대였을까? 인간의 공막(눈의 흰자위)은 영장류 중 유일하게 희다. 멀리서도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조직적으로 사냥하기에 좋다. 늑대도 그렇다. 갯과 동물 25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늑대는 얼굴과 눈 색깔, 홍채와 눈동자가 강하게 대비돼 시선의 방향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개가 늑대보다 인간을 응시하는 시간이 평균 2배 길다는 것도 인간이 그런 개체를 선택해 길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침입종 인간’의 저자는 “인간이 개를 가축화한 건 도구의 발명과 맞먹는 도약”이라고 강조했다.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이 담긴 개 모양 연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이 담긴 개 모양 연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렇게 길들인 개는 오랜 세월 충직함의 대명사였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를 반긴 유일한 존재가 늙은 개 ‘아르고스’였다. 불길에서 주인을 구한 전북 임실의 ‘오수의 개’ 이야기도 유명하다. 최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연 학술강연회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 속의 개 이야기를 살펴봤다.

“십이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戌)는 시간으로는 오후 7∼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로는 음력 9월에 해당하는 방위 신(神)이자 시간 신이다. 개는 이 방향과 이 시각에 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동물 신이다.”(천진기 관장)

천 관장에 따르면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동물로 인식됐다. 이런 생각은 중앙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알타이 샤먼은 저승에 갈 때에 지옥문에서 개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무속신화인 세민황제본풀이, 저승 설화에서도 그렇다. 제주도의 차사본풀이에서 염라대왕은 자신을 만나고 돌아가는 강림차사가 이승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흰 강아지 한 마리와 떡 세 덩이를 주면서 ‘떡을 조금씩 떼어 강아지를 달래며 뒤따라가면 알 도리가 있으리라’고 했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20세기 민화 ‘당삼목구(唐三目狗)’는 개가 짖어 삼재(三災)를 쫓는다는 의미다.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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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민화박물관 소장 20세기 민화 ‘당삼목구(唐三目狗)’는 개가 짖어 삼재(三災)를 쫓는다는 의미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옛날에는 개의 이상한 행동이 미래의 일을 예견한다고 믿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진평왕 53년 춘2월에 흰 개가 궁중의 담장 위에 올라갔다. 5월에 이손과 아손이 모반한 것을 왕이 알았다”라고 나온다. 흰 개의 행동을 모반을 암시한 것으로 본 것이다. 백제본기에도 백제가 망하기 한 달 전 “들 사슴 모양을 한 개가 서쪽에서 와서 사비성 강둑에 이르러 왕궁을 보고 짖어대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선조들은 ‘개가 지붕 위에 올라가면 흉사가 있거나 가운(家運)이 망한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개 그림도 적지 않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벽화 견우직녀도에는 직녀는 개를 데리고 서 있고 무용총과 각저총에도 충직해 보이는 개 그림이 있다. 신라 토우의 개는 외견이 아주 다채롭다.

조선시대에도 개를 많이 그렸다. 나무 아래 개가 그려진 그림은 ‘집을 잘 지켜 도둑을 막는다’는 것을 뜻한다. ‘개 술(戌)’자는 ‘지킬 수(戍)’자와 모양이 비슷하고 ‘나무 수(樹)’자와도 음이 같기 때문이다. 오동나무, 대나무, 복숭아나무 밑에 그려진 개는 각각 상서로움과 평화로움, 영생과 불변, 장생을 오래 누리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개 중 흰둥이는 전염병과 도깨비, 잡귀를 물리치고,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재난을 경고해 준다고 믿었다. 농가에서는 노란색이 풍년과 다산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누렁이를 많이 길렀다.

물론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들개는 위협이 됐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패관잡기’에도 조선 중종 말부터 서울 돈의문 근처 인가에서 키우던 개들이 북쪽 산에 올라가 살며 6, 7년 사이에 40∼50마리로 불었고, 떼를 지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고 나온다. 천 교수는 “개가 위협하지 않아도 개에 공포를 느끼거나 공황에 빠질 수 있는 ‘개 공포증’이 오늘날 동물 공포증 가운데 35%를 차지한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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