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뉴욕 빈민가에 드리워진 자본주의의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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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제이컵 A. 리스 지음·정탄 옮김/472쪽·1만8000원·교유서가

19세기 미국 뉴욕 도심의 빈민 공동주거지 모습. 저자는 소외계층의 주거공간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공동주택 설계방식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도면, 통계 등 관련 자료를 풍성하게 실었다. 교유서가 제공
19세기 미국 뉴욕 도심의 빈민 공동주거지 모습. 저자는 소외계층의 주거공간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공동주택 설계방식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도면, 통계 등 관련 자료를 풍성하게 실었다. 교유서가 제공
저자 제이컵 A 리스는 덴마크 출신의 미국 신문기자다. 1870년 21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뒤 한동안 목수 일과 농장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뉴욕 빈민가에서 무료 급식에 의존해 지내며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873년 ‘브루클린 뉴스’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4년 뒤부터는 ‘뉴욕 트리뷴’ 소속으로 맨해튼 빈민가의 범죄와 빈곤 문제를 주로 취재했다. 그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은 주요 대상은 이민자와 빈민의 밀집 공동주거지였다.

한 세기 반 전 뉴욕 빈민가의 이미지를 현 시점에서 책을 통해 들여다봐야 할 까닭이 뭘까. 이 책을 읽을까 말까의 선택은, 책을 마무리하며 리스가 적은 아래 글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의해 좌우될 거다.

“숱한 사람들이 괴로운 생의 족쇄에 얽매인 채 공동주택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미 우리의 도시는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깨닫기 전에 걷잡을 수 없는 팽창의 물결에 짓눌렸다. 그 물결이 후벼 파낸 계층 간의 골은 나날이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귀족을 비호하고 빈민을 짓누르는 저 건물들을 이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책 말미 해제(解題)가 밝혔듯 리스 이전에도 도시 공간을 촬영한 사진가는 많았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도 그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도시 공간을 피사체로 삼은 사진은 대개 웅장한 번화가의 모습과 화려한 건축적 디테일을 포착하는 데 열중했다.

반면에 한때 생사 경계를 오가며 생활했던 터전을 돌이켜 짚어간 저자의 사진에는 미학적 성취에 대한 강박의 흔적이 없다. 우쭐함에 물든 설익은 연민도 감췄다. 그의 뷰파인더는 카메라 앞 대상과 경계를 긋지 않았다. 멋지게 찍으려 한 기색이 없는 까닭에, 오래 묵었으나 여전히 생생하다.

“여관 대들보 사이에 매단 범포(帆布)는 7센트짜리 투숙객을 위한 침상이다. 투숙객들이 밤새 몇 번이나 굴러 떨어지지만 옆 침상에 닿을 정도까지 구르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밤, 그 침상이 모두 차 있을 때 나는 몇 번인가 객실 한복판에 서서 규칙적인 발동기 소리처럼 들리는 코골이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리스는 사진 슬라이드 쇼 강연회를 여러 차례 열어 빈민가의 문제를 사회에 호소했다. 그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 중에는 1890년대 중반 뉴욕 경찰청장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있었다. 대통령 취임 후 루스벨트는 대도시 슬럼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리스는 대통령 고문으로 활동하며 1902년 후속 저작 ‘빈민가와의 전쟁’을 펴냈다.

“평화로운 선잠에 빠져 지내는 여론은 공동체의 품위와 건강이 극단적으로 침범당하거나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현관문을 두드릴 때 벌떼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금세 사그라지는 분노다. 이 같은 불안정함은 관계당국의 더딘 대응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제이컵 a 리스#정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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