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젓가락은 때로 사랑의 시보다 강렬한 증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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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Q 에드워드 왕 지음/김병순 옮김/416쪽·2만2000원·따비

홍콩 스탠리마켓에 진열된 젓가락과 젓가락받침, 그릇들. 따비 제공
홍콩 스탠리마켓에 진열된 젓가락과 젓가락받침, 그릇들. 따비 제공
한나라 때 탁문군이라는 여인은 연회에서 만난 사마상여에게 반해 연시를 쓰고 젓가락 한 쌍을 함께 줬다. 가난한 남자에게 딸을 주고 싶지 않았던 탁문군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사랑을 극구 반대했지만, 탁문군은 집을 나와 사마상여와 함께 도망쳤다. 아버지는 둘의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이 러브스토리에서 ‘젓가락’은 연시보다도 강렬한 사랑의 상징이다. 젓가락은 떨어져서는 무력한 한 쌍이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인 Q 에드워드 왕 로언대 교수는 이 책에서 젓가락의 역사를 추적한다. 중국 장쑤 성에서 발굴된, 최초의 젓가락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뼈막대들은 기원전 6600년∼기원전 5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식사 도구라기보다는 조리 도구에 가까웠던 이 막대들은,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음식을 뜨겁게 끓여 먹었던 중국인의 음식 문화에 따른 것이었다.

저자는 ‘젓가락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의 젓가락 쓰임새를 살펴본다. 중국에선 국수와 만두 같은 음식이 대유행을 하면서 젓가락이 주된 식사 도구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의 경우 젓가락 문화권 중 유일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주된 식사 도구로 사용한다. 한 상에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중국의 경우 젓가락의 길이가 25cm 이상으로 길지만, 개별 식사 방식을 선호하는 일본은 젓가락의 길이가 짧다. 저자는 젓가락이 갖는 문학적 상징과 함께 상아 젓가락은 사치와 방탕, 금 젓가락은 강직하고 곧은 성격 등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이야기도 들려준다.

한국에 관한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젓가락에 얽힌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탐색은 흥미롭다. 젓가락의 ‘기품’이 확인되는 건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젓가락은 지치지 않고 어머니가 밥을 한 입 떠먹이는 것 같은 몸짓을 하는 반면, 창과 칼로 무장한 서양의 식사 방식에는 포식자의 몸짓이 여전히 남아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젓가락#q 에드워드 왕#탁문군#사마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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