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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광표]피란수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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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광표]피란수도 부산

이광표 논설위원 입력 2018-01-10 03:00수정 2018-01-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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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피란 시절,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부산에 살았다. 그는 동구 범일동에 거처를 구한 뒤 부산 도심의 광복동과 국제시장 등지를 오가며 생계를 마련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금강다방 르네쌍스다방 녹원다방 늘봄다방 등 광복동 일대의 다방을 즐겨 찾았다. 물감 구입할 돈이 부족했던 그는 다방에서 담뱃갑 은지에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명작들은 이렇게 피란기 부산의 궁핍에서 태어났다.

▷6·25 발발 두 달 후인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 정부가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대통령과 관료 정치인, 군인과 군수물자가 부산에 모였다. 대학도 부산으로 옮겼고 지식인 예술인들은 광복동으로 몰렸다. 4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피란기 100만 명에 달했다. 국제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 시기였다. 20세기 부산의 역사에서 6·25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최근 문화재청은 부산시가 신청한 임시수도정부청사(임시중앙청), 임시수도대통령관저(경무대), 부산근대역사관(미국대사관), 부산지방기상청(국립중앙관상대),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 등 8곳을 잠정목록으로 승인했다. 조선시대까지의 유산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은 광복동 옆 부민동에 있는 임시수도정부청사. 1925년 경남도청 건물로 지었으나 6·25전쟁기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동아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국의 박물관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공간 중 하나로 꼽힌다.

▷잠정목록은 말 그대로 잠정이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심사관문을 거쳐야 한국의 후보로 최종 선정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피란민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을 추가하고 보존관리 계획을 수립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부산시가 귀 기울여야 할 지적이다. 8건의 건축물뿐만 아니다. 피란기 이중섭의 예술혼과 광복동 다방을 비롯해 문화 예술의 흔적까지 기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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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피란수도 부산#6·25#피란민의 생활상#부산 광복동#임시수도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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