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사교육은 나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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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큰 선거판이 열리니 사교육이 또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길고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입시 과열을 불러오고 공교육을 망가뜨리는 악의 근원 정도로 인식하는 탓이다. 학원에 갖다 바치는 돈에 부모의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늦은 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뉴스를 보면 이 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어떤 처방에도 끄떡없는 돌연변이 좀비바이러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국민적 분노가 있으니 국민투표로 사교육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고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이래서 사교육이 문제’라는 식의 보도가 줄을 잇는다. 대선 주자 몇 명의 공약과 사교육을 매섭게 비판하는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며칠 내에 사교육 시장이 결딴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사교육업체 임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말이 그렇지 달라질 게 없으니까 항의할 필요 없어요. 공교육 정상화가 목표면 학교에서 잘 가르치면 되잖아요. 근데 왜 사교육만 문제라고 욕하는 거죠?”

다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논리로 무장된 말이긴 하지만 공교육 정상화의 길을 왜 사교육 때리기에서 찾는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다. 학부모를 붙잡고 “아이들 공부는 학교와 학원 중 어디가 책임지고 있나”라고 물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이런 실상을 외면하고 오로지 사교육 때리기에만 몰두하니 이렇게 해서야 좋은 처방이 나오겠나 싶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게 옭아맬 생각 대신,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잘 거친 학생이 높은 평가를 받도록 훌륭한 학습 방법을 개발하고 적용할 궁리는 왜 안 하는가.

학원 강사는 잘 가르쳐야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폐강돼 쫓겨난다. 그러니 학생이 알아듣기 쉽고 필요한 대목을 콕 집어 가르친다. 냉혹한 평가를 거치지만 거액의 몸값이라는 분명한 당근이 주어지니 학원은 그야말로 효율적으로 잘 돌아간다.

학교는 어떤가. 잘 가르치는 교사를 선발하려다간 ‘공교육에 경쟁의 피바람을 불러 온다’며 집단으로 반발하기 십상이다. 하루를 좀더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등교 시간과 하교 시간을 20분씩 당기자는 한 고등학교 교장의 제안에 삭발로 맞선 교사도 봤다. 우수한 학생이 교대에 지원해 들어가 치열한 경쟁 끝에 임용고시에 붙어 영광스러운 교육자의 타이틀을 얻은 뒤에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다. 학교가 학원보다 잘 가르치고,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학생이 혼자 또는 그룹으로 해내야 하는 적절한 분량의 숙제가 주어지면 학원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갈 새가 없게 된다.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교사의 질 향상은 외면하고 학원만 두드린다고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한 처방이 지속되는 한 학교 교육의 질적 저하는 막을 길 없고 번성하는 사교육 시장에 학부모 학생의 비명이 멎을 리 없다. 책 한 권만 배워도 충분한 내용을 반드시 10권을 배워야 한다고 속여 과열을 부추기는 얄팍한 상술의 사교육이나, 학부모에게 공포심을 심어줘 습관성 중독에 빠지게 만드는 사교육은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 학원의 이런 문제점은 이에 맞는 메스를 들이대 정교하게 도려내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만 학원을 문 닫게 한다고 저절로 학교가 좋아지지 않는다.

교사는 경쟁하면 안 되는 존재인가. 아이들 잘 가르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평가해 기준에 미달하면 퇴출시키는 방안이 도입되지 않고서는 이 나라 공교육에 미래는 없다. 반발이 두렵다고 분명한 환부는 놔두고 엉뚱한 곳에 메스를 들이대는 처방은 그만할 때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사교육#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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