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2017 대학축제… 다시 ‘현실’ 꼬집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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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캠퍼스는 축제중

축제가 한창이던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차려진 금주 캠페인 부스를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설치된 부스에선 세월호 참사 3년 사진전과 함께 유가족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이 이뤄졌다(아래쪽 사진). 지난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과 최순실 씨 ‘학사 농단’으로 홍역을 앓은 뒤 열린 이번 이화여대 축제에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축제가 한창이던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차려진 금주 캠페인 부스를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설치된 부스에선 세월호 참사 3년 사진전과 함께 유가족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이 이뤄졌다(아래쪽 사진). 지난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과 최순실 씨 ‘학사 농단’으로 홍역을 앓은 뒤 열린 이번 이화여대 축제에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해 11월 대학가는 실로 오랜만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지면서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흡사 6월 항쟁이 뜨겁게 이어지던 30년 전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대학가는 다시 들썩이고 있다. 5월 셋째 주부터 대부분의 대학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최악의 취업난에 맞닥뜨린 학생들이지만 그래도 축제 현장에서는 한껏 흥을 내고 있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지나친 상업화로 대학 축제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폭음과 성(性)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대학 축제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술이 넘치고 비싼 출연료의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왜곡된 사회 현실을 꼬집으려는 움직임이 축제 현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대학 축제의 현장을 둘러봤다.

이름도 내용도 ‘바꿔 바꿔’

올해 서울대 축제의 이름은 ‘뭔 나라 이런 나라’다. 심화되는 빈부격차, 높은 청년실업률 등을 풍자한 것이다. 최근의 정치적 문제들을 꼬집는 뜻도 담겨 있다. 지난해에는 1학기 때 ‘서울대공원’, 2학기 때 ‘쇼윈도탈출’이었다. 둘 다 쌓인 스트레스를 실컷 풀어보자는 뜻이 강했다. 김진희 서울대 축제기획단장(23·여)은 “놀이문화 안에서도 최대한 우리가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축제명은 ‘梨이루다’. ‘이화를, 변화를, 다함께 이루다’라는 의미다. 지난해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 문제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의 이른바 ‘학사 농단’ 사태로 홍역을 치른 탓인지 다 같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자는 뜻이 담겼다.

한양대의 ‘하이 파이브(HY-five)’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축제를 함께 즐기기 어려웠던 성적 소수자와 한국으로 온 유학생, 장애학생 청소노동자 혼밥혼술족 등도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제목만 바뀐 것이 아니다. 한양대생들은 성적 소수자 이해의 장을 마련했다. 자신의 친구가 성적 소수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통통 튀는 사회 참여형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이화여대와 고려대는 올해 랩 대항전을 펼쳤다. 이화여대에서 열린 ‘이화래퍼’에서는 ‘대동, 변화, 연대’ 등의 단어를 넣으면 가산점을 줬다. 고려대 랩 대항전에서도 취업난 등 각박한 현실을 풍자하는 노래가 나왔다.

이화여대 축제장에서는 도박 예방 활동도 펼쳐졌다. 이름하여 ‘이대 나온 타짜’. 영화 타짜에서 배우 김혜수가 도박 단속 경찰관에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한 것에서 딴 이름이다. 간호학과 학생들로 이뤄진 일명 ‘도박문제예방활동단’은 ‘도박의 빚을 희망의 빛으로!’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캠페인을 펼쳤다. 한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술 마시러 왔다가 들렀는데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3주년에 맞춰 부스를 연 동아리 ‘화인’은 활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음료와 폰케이스를 팔았다. 화인은 세월호 관련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지울 수 없는 불도장’이라는 뜻이다. 사회학과 4학년 구모 씨(24·여)는 “축제라고 하면 학생들이 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회 참여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축제 때 부스를 차렸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축제에서 열린 ‘말하는 대로’라는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사회에 대한 울분을 토해냈다. 이화여대 중국인 유학생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물품과 기증받은 물품으로 자선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시대상 투영된 5월의 축제

대학 축제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시절 사회 상황에 따라 청춘의 5월도 달라지는 것이다. 자유의 바람이 불 때는 함께 어울려 스트레스를 푸는 날이었고, 독재에 대항하던 시기에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현대적 형태의 대학 축제는 1956년 10월 신흥대(현 경희대)에서 처음 열렸다. 대중적으로 대학 축제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 ‘축전’으로 불린 당시 대학 축제 분위기는 서양문화 따라잡기였다.

가장 인기를 끈 행사는 남녀가 어울리는 쌍쌍파티였다. 1964년 5월 숙명여대에서는 ‘가든파티’가 열렸다. 인기 좀 있다는 남녀 대학생들의 사교의 장이었다. 70여 명이 참석한 파티에는 공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학생대표가 함께 모여 불고기를 먹었다. 칵테일이 곁들여진 가운데 가야금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한국의 대학 축제를 대표하는 ‘고연전(연고전)’도 1965년 현재와 같은 야구, 축구 등 5개 종목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대학 축제가 서구문화에 치우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높아졌다. 1968년 ‘한국레크리에이숀’이라는 단체가 서울 소재 13개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민속적인 프로그램이 많이 포함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이 77%가 나왔다. 연구를 진행한 측은 “농촌을 기반으로 축제가 진행되다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부조화가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1970년대는 대학 축제에도 저항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점차 고조돼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대학 축제가 반정부 시위로 변하는 양상이 지속되자 전두환 정권은 1981년 ‘국풍81’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이른바 관제 대학 축제인 셈이다. 당시 정권은 또 학생회를 견제하기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어 학술행사 위주의 관제 축제를 캠퍼스에서 열도록 했다.

하지만 대학 축제를 통한 저항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1980년대 중반 무렵이다. 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태근 전 의원은 “축제 개폐막식은 항상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며 “축제 기간에는 군사정권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씨암탉 잡기부터 메이퀸까지

“육사 군악대의 왈츠에 맞춰 메이퀸이 졸업생으로 구성된 32명의 시녀들을 거느리고 입장한다. … 청초한 한복 차림의 여왕이 왕관을 쓸 때 군악대의 팡파르는 신록 우거진 이화여대 캠퍼스를 울려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동아일보 1967년 5월 31일자 기사)

1908년 시작된 이화여대 ‘메이퀸’ 행사는 1978년 폐지될 때까지 대학 축제의 상징이었다. 그만큼 선발 기준도 까다로웠다. 단정한 용모는 기본. 성적은 B학점 이상, 키는 160cm를 넘어야 했다.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신앙심도 깊어야 했다.

고려대 축제에서는 1962년부터 ‘역사 인물 가상 재판’이 열렸다. 학생들이 가상 재판소를 꾸려 역사적 인물들을 피고인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대상은 흥선대원군부터 메릴린 먼로까지 다양했다. 1967년 피고인으로 소환된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은 “술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 있겠느냐” “가두어 보시오. 병보석으로 하루 만에 나올 테니” 등의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공대생 200여 명이 운동장에 풀어 놓은 씨암탉 4마리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우스꽝스러운 풍경도 펼쳐졌다. 1990년 서울대 축제에서 열린 ‘씨암탉 잡기 대항전’이다. 1962년 이화여대 축제에선 국내 최초로 포크댄스 행사가 열렸다. 당시 500환에 초대권을 사고 당첨된 남학생 600명은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포크댄스 ‘스텝’을 배우며 1시간가량 춤을 췄다.

1976년 건국대에서는 ‘우유 마시기 대회’가 열렸다. 300mL 우유통을 가장 빨리 비운 기록은 3초. 종목도 ‘빨리 마시기’ ‘멋있게 마시기’ ‘커플 대항전’ 등 다양했다. 그중에서 손을 교차해 연인에게 우유를 먹여주는 커플 대항전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들만의 파티 아닌 모두의 축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학 축제가 지역공동체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단순히 먹고 노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활동이 함께 이뤄진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축제는 6월 도심 광장에서 열린다. 이곳에 공연장과 동아리들의 부스가 마련돼 학생과 시민이 함께 축제를 즐긴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의 4월 축제는 지역 주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학교의 대표 밴드가 앞장선 가운데 동아리들이 줄지어 마을을 돌며 퍼레이드를 벌인다. 행렬에는 학생뿐 아니라 마을 주민과 경찰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를 졸업한 류모 씨(27)는 “한국의 대학 축제는 젊은이만 있지만 미국의 대학 축제에는 가족 단위로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 축제도 결국 시민들도 함께하면서 지역사회 공동체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며 “대학생들이 내부적으로 자족하는 데 머물지 말고 대학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사회와도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황성호 기자
#대학축제#5월 대학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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