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세균 배양실에서 밥먹는 학생들… 2014년에만 사고 150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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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실험실 안전한가]미래부 ‘연구실 안전 통계’ 입수

2007∼2014년 국내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의 대부분은 대학 실험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실험실은 지난해 12월 기준 총 4만1592개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연구소와 기업부설연구소를 합친 연구기관(4만7786개)보다 적지만 안전사고 10건 중 9건이 대학 실험실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생물실험실. 다루는 미생물이 실험실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무균실험대’ 안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미생물을 다루는 ‘생물안전도(BL)1’ 실험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동아일보DB
일반적인 생물실험실. 다루는 미생물이 실험실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무균실험대’ 안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미생물을 다루는 ‘생물안전도(BL)1’ 실험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동아일보DB
○ 안전등급 낮다는 인식에 안전의식 허술해져

8일 본보가 입수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실 안전 관련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공공연구기관, 기업연구소, 대학 실험실 등에서 발생한 사고 총 965건 가운데 873건(90.5%)이 대학 실험실에서 일어났다.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기업연구소에 취직한 한 졸업생은 “기업연구소에 와보니 대학 실험실의 안전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취약했나를 피부로 느낀다”고 밝혔다.

이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다루는 생물 관련 대학 실험실의 안전 등급인 ‘생물안전도(Biosafety Level·BL)’와도 관계가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미생물은 위험도에 따라 1∼4단계로 나뉘는데, 각 단계에 해당하는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실을 BL1∼4로 구분한다. 대학 실험실은 대부분 가장 낮은 BL1, 2로 연구원들의 안전 인식도 느슨해지기 쉽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에도 3등급 이상 실험실은 없다.

BL1에서는 건강한 성인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고 환경에도 유해하지 않다고 알려진 미생물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BL2부터는 병원성이 있는 미생물을 다룰 수 있다. 가령 위궤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균, 식중독균인 리스테리아, A·B형 등 간염바이러스도 다룬다.

이들은 실험 과정에서 잠깐의 부주의로 감염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한 대학에서는 임상 실습을 하던 중 B형 간염환자에게 사용한 주삿바늘에 학생이 찔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9월에는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에게 사용한 주삿바늘에 찔리는 사고도 있었다.

경험이 없는 학부생일수록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대학 실험실 안전사고의 피해자는 석·박사과정 연구원보다는 학부생이 2배 가까이로 많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 실험실 인턴으로 있는 학부생은 “대장균을 다루는 실험을 하고 있지만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이틀짜리 안전교육을 받은 게 전부”라고 밝혔다.

‘생물안전도(BL)3’ 연구실에서는 결핵균이나 페스트, 메르스 바이러스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한 미생물을 다루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음압 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실험을 한다. 동아일보DB
‘생물안전도(BL)3’ 연구실에서는 결핵균이나 페스트, 메르스 바이러스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한 미생물을 다루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음압 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실험을 한다. 동아일보DB
생물안전도가 3단계인 실험실(BL3)부터는 병원성이 강하고 인체에도 치명적인 미생물을 취급한다. 결핵균, 리케차균, 페스트균이나 2003년 유행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올해 국내를 강타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이번에 건국대 집단 폐렴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곰팡이류의 경우 BL3에서만 취급할 수 있는 대표종이 5∼6종이나 된다.

한편 안전등급이 가장 높은 BL4는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인체에 감염됐을 때 치료가 어려운 미생물을 다룬다. 국내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BL4 실험실을 구축 중으로 현재 운영되는 곳은 없다.

○ 현장 ‘암행’ 점검 안 이뤄져 실효성 의문

미래창조과학부는 2007년부터 현장지도·점검 활동을 통해 대학 실험시설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 미래부 담당 공무원과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소속 안전 전문가 등 3∼5명으로 구성된 팀이 연구실의 안전관리 규정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생물 실험실의 경우 가장 많이 적발된 사례는 폐기물 처리 방식이다. 폐기물에 섞인 미생물이 에어로졸을 타고 올라와 공기 중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뚜껑을 닫아 둬야 하지만 실험실에서 폐기물 처리 용기 뚜껑을 열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실험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사례도 여럿 적발됐다. 주로 귀찮거나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세균을 보관하는 실험용 냉장고에 음식을 함께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래부 관계자는 “연구실에서 안전 관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 연구원이 미래부에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법 조항도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점검에서 발각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래부가 현장점검을 불시에 암행으로 진행하지 않고 한 달 전 대학과 실험실에 미리 통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점검을 나가기 2주 전까지 해당 기관(실험실)에서 점검 현황표를 미리 받아 검토한다. 현장점검만 무사히 통과하면 별 문제가 없는 셈이다.

실험실 안전 규정이 물리적 폭발이나 화재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감염병 등에는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숙명여대 한 졸업생(석사)은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실의 특성에 적합한 안전 지침을 확인하기보다는 실험실 내 화학물질 보관이나 관리, 소화기 비치 여부 등 화재 위험에만 치중돼 있다”고 말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생물 안전교육을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며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의 공기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의 공조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대학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 “독성 가스 새나가도 경보 안 울려”… 2014년 대학서 화학물질 사고 22건 ▼

대학 연구실에서는 공기 중 감염 외에 접촉에 의한 안전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이는 화학물질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학물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다루는 생물 분야 실험실부터 물리학, 화학공학 등 이공계 대부분 실험실에서 두루 쓰인다. 화학물질의 종류도 에탄올 같은 단순 용매부터 브롬화에티듐 등 발암물질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실험실 전체사고 175건 가운데 대학에서 발생한 사고는 153건. 이 중 22건은 화학물질 접촉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합물 중에는 특히 유의해서 다뤄야 하는 종류가 많다. 황산이나 질산처럼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은 반드시 ‘퓸 후드(fume hood)’ 안에 보관하도록 돼 있다. 퓸 후드는 실내에 유해 가스가 퍼지지 못하도록 내부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는 장치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는 화학물질도 있다. 농도 30% 이상인 과산화수소, 아자이드, 오조나이드 화합물 등은 다른 화합물과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실제로 2011년에는 아자이드 화합물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하던 중 충격이 가해져 폭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독성 화학 가스에 의한 사고도 있다. 2013년 세종대 연구실에서는 삼브롬화붕소 용기가 파손되면서 용기 속 물질이 가스로 유출돼 건물에 있던 2000여 명이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삼브롬화붕소 가스를 흡입할 경우 폐렴과 폐부종 등이 생기고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

또 다른 독성 가스인 염소 기체를 흡입하는 사고를 당한 한 대학 연구원은 “가스가 누출됐을 때 경보가 울리는 게 정상이지만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며 “냄새로 가스 누출을 감지해 대피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을 버릴 때는 반드시 산성, 알칼리성과 유기물, 무기물로 구분해 저장 용기에 모으게 돼 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수칙을 어기는 바람에 생기는 사고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1년에는 실험에 쓴 에탄올을 산성 용액이 들어있는 폐수 용기에 버리는 바람에 둘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 가스가 발생했다. 2010년에는 폐수 저장용기에 황산과 유기 용매인 톨루엔을 함께 넣는 바람에 용기가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2013년에는 질산과 개미산을 한 수거용기에 동시에 버리는 바람에 유독 가스가 발생해 해당 실험실은 물론이고 인접 실험실에 있는 연구원들이 모두 대피했다.
:: 생물안전도(Biosafety Level·BL) ::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등의 미생물과 병원체 등을 다루는 실험실을 안전도에 따라 등급을 매긴 것이다. 미생물이나 병원체를 위험 정도에 따라 1∼4단계로 나누고, 이 단계에 따라 실험실 생물안전도가 결정된다. BL 등급이 높을수록 인체에 유해한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실로 분류된다.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
#대학 실험실#연구실 안전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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