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울고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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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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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에 갇힌 석탑 “숨쉬고 싶어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이전 모습(왼쪽)과 유리보호각을 설치해 놓은 현재 모습. 동아일보DB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이전 모습(왼쪽)과 유리보호각을 설치해 놓은 현재 모습. 동아일보DB
2003년 유리보호각의 판유리 가운데 하나가 깨진 모습(붉은색 점선 안). 동아일보DB
2003년 유리보호각의 판유리 가운데 하나가 깨진 모습(붉은색 점선 안). 동아일보DB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가면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조선 1467년·높이 12m)이 있습니다. 이 탑은 흔히 보아온 전통 석탑과는 그 모양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하늘로 쭉 솟아오른 날렵한 몸매, 층층이 화려하고 정교한 탑신(塔身·몸체)과 표면 조각…. 독특하고 이국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조선시대엔 이곳에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요. 그래서 이 탑을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라고 부른답니다. 여기서 원각사지의 ‘지(址)’는 터라는 뜻이에요.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매우 흡사한 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전시 중인 국보 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고려 1348년)이 있습니다.

○ 이국적 모습은 어디서 온 것일까

1∼3층 탑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자형(亞字形)입니다. 정사각형이 있고 네 개의 변으로 직사각형이 튀어나온 모습이어서 아자형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1∼3층 탑신은 각각 20개 면으로 구성돼 있어요. 아자형은 중국 원나라 때 라마교 탑과 비슷한 대목이에요. 고려 때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고,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경천사지 석탑을 모방해 만들었답니다. 탑의 표면은 다른 탑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조각이 정교하고 복잡합니다. 탑신엔 각종 불교 관련 내용과 동식물이 조각돼 있어요.

우리나라 거의 모든 탑이 화강암 재질이지만 이 탑은 대리석 재질입니다. 대리석은 화강암에 비해 부드럽지요. 그래서 1∼3층 탑신을 20개 면으로 만들 수 있었고, 또한 그 표면에 정교한 조각을 넣을 수 있었던 겁니다.

○ 탑에 유리보호각을 씌운 까닭은

원각사지 10층 석탑에는 또 다른 독특함이 있습니다. 거대한 유리보호각이 덧씌워져 있다는 점이지요. 그럼, 왜 이 같은 보호각을 만든 걸까요? 야외에 있는 석탑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늘 훼손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화강암 탑보다 약한 대리석 탑은 어떻겠습니까? 화강암 탑보다 더 빨리 훼손이 진행되겠지요.

게다가 탑골공원은 비둘기들이 집단 서식하는 곳이어서 비둘기의 배설물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비둘기 배설물이 석탑에 떨어지면서 표면의 훼손을 더욱 부채질하게 됩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이 유리보호각이었습니다. 1999년 말 서울시는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유리보호각을 만들어 탑을 완전히 덮어씌웠습니다.

○ 경관과 관람을 망가뜨린 유리보호각

12m에 이르는 석탑을 유리보호각으로 완전히 덮어씌운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입니다. 탑을 완전히 감쌌으니 어쩌면 완벽한 보존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탑을 보면 답답하고 안쓰럽기 짝이 없습니다.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을 막아낼 수는 있지만 탑의 경관은 망가졌습니다. 유리의 반사로 탑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몸체에 새겨진 무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유리보호각은 먼지와 얼룩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요. 관리 주체인 서울 종로구에서 정기적으로 청소한다고 해도 금세 먼지와 얼룩이 쌓이지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게다가 2003년에는 보호각 동쪽 면의 판유리 가운데 한 장(1.5×1.5m)이 깨지는 사고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어요.

○ 야외 석탑,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유리보호각이 탑의 경관을 훼손하고 관람을 방해하게 된 현실. 1999년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보면 좀 더 신중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럼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리보호각을 걷어내는 것이 좋을까요? 이에 대해선 “석탑의 경관과 관람 환경을 되살릴 수는 있지만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 낼 수 있느냐”는 반론이 나오겠지요. 이와 관련해 “보호각은 철거하되 탑골공원 전체의 지붕을 유리돔으로 꾸미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떤가” 하는 견해도 있답니다.

아니면 경천사지 10층 석탑처럼 아예 실내로 옮기는 것이 나을까요? 이 의견은 “문화재는 최대한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에 부닥치게 됩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원래 의미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해 “석탑의 진품은 실내로 옮기고 탑골공원엔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면 어떤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마뜩지 않습니다.

석탑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를 살리면서 보존도 하고 또 우리가 제대로 감상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자연환경과 호흡하고 사람들의 숨결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원각사지 10층 석탑#탑골공원#유리보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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