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고갯길 깎고 학교지하에 주차장 추진… 고즈넉한 북촌 한옥마을에 웬 북새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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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 재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정독도서관 사이의 화동고갯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언덕을 깎고, 학교 운동장에 지하주차장을 넣으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재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정독도서관 사이의 화동고갯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언덕을 깎고, 학교 운동장에 지하주차장을 넣으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북촌은 옛것의 불편함을 즐기러 오는 동네입니다. 관광객 차량이 쉽게 접근하라고 조용한 동네를 헤집겠다니요.”

경복궁 동쪽과 창덕궁 서쪽 사이에 위치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600년 도성의 숨결이 담긴 시간이 머무는 동네가 최근 대규모 공사계획으로 어수선하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인근 초등학교에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울퉁불퉁한 고갯길을 깎아 반듯하게 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 옛것에 대한 보존과 관광객 편의를 위한 개발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

최근 종로구는 실내체육관 건립을 추진하는 118년 역사의 재동초등학교에 151면 규모의 지하주차장을 함께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운동장을 파서 △지하 2, 3층에 6600m² 규모의 주차장 △지하 1, 2층에 900m²의 실내체육관 △지하 1층에 관광안내소, 전시시설, 공용화장실 등을 만들자는 것이다.

구는 지하주차장 건설비(102억 원) 전액과, 체육관 공사비(52억5000만 원)의 절반을 시와 함께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지하주차장을 포함한 재동초교 복합화시설 아이디어는 몇 년 전부터 나왔지만 지난해 9월 새로 부임한 교장이 체육관 건립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지하주차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송승하 씨(36·여)는 “재동초교는 북촌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있어 지금도 관광버스가 많이 오가고 있다”며 “여기에 주차장까지 생겨 차량 통행이 증가하면 아이들의 교통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고, 북촌의 상업화도 한층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절차적인 문제도 논란이 됐다. 학교 측은 지난달 말 학부모들에게 체육관 건립에 대한 의견조사서를 발송하면서 지하주차장도 함께 건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지 않아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박인화 재동초교 교장은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체육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일 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설명회를 통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동창회, 학부모, 지역주민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지상체육관 △주차장 없는 지하체육관 △지하주차장-지하체육관 복합시설 등 세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지하주차장 설치가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종로구는 재동초교와 정독도서관 사이의 언덕인 화동고갯길을 1m가량 깎아 완만하게 만들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고개가 가팔라 반대편이 잘 안 보여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고 차량 통행도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북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사업 반대 서명에 주민 2400여 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은 “반듯하고 현대화된 길에 싫증난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옛 정취를 즐기기 위해 오는데 차량 통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언덕을 깎겠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북촌을 보전의 관점 대신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개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개발에만 치중하다 보면 북촌이 정체성을 잃고 개성 없는 관광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계현 북촌을아끼는사람들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도심도 가파른 언덕길이 대부분이지만 언덕길을 깎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로마나 아테네 등 유서 깊은 도심을 관광할 때는 대개 먼 곳에 차를 세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북촌에 주차공간이 부족해 학교에 지하주차장을 제안했지만 결정은 전적으로 학교에서 할 일”이라며 “화동고갯길의 경우 전문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북촌#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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